2012년 4월 19일 목요일

우울증을 향해 방향을 튼다. / 너는 용납되었다

'너는 이러이러 해야한다.' 라고 말할때 말하는 사람의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각자의 상황은 다 다르다.
부모가 자식에서 '너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고 강하게 말할때, 자식은 드러나지 못한다.
부모의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무게에 눌러 자신은 드러 나지 못한다.
왜곡되어져 자라게 된다.

사회의 강력한 논리가 개인을 누를때 사회속의 개인은 자신을 드러낼수 없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 가는 개인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세상은 정보와 되어 엄청나게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의 잘못이 바로 인터넷을 타고 휴대폰을 타고, 세상에 드러난다. 엄청난 비난이 빛발친다.
각 개인들은 비난을 하면서도 그게 내가 될수 있다라고 조심한다.
개인의 강력한 논리는 그 개인의 무의식을 누른다.
비도덕적인 타인을 비난하면서 비난의 대상이 자신이 될수 있다는 엄청한 두려움도 같이 느낀다. 그 느낌은 드러 나지 않고, 무의식에 존재한다.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사회의 강력한 규범만을 드러 낼수 있다.

스스로를 스스로 가둔다. 사회속에 개인은 드러날수 없으므로 왜곡된다.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부모일수록 자식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수가 많다.
자식의 입장에서 용납되어 지지 못할수 있다라는 생각은 자식의 불안을 만들어 낸다.

세상이 개인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느낌은 개인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간다.
불안한 개인들... 그중 마음의 순수하고 약한 사람들은 우울증을 향해 방향을 튼다.

"너는 용납되었다. "
누군가 이렇게 말할때, 온전해 질수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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