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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4일 목요일

빅터프랭클 / 무의식의 신 / 실존심리학 / 대구 흙과씨앗

빅터 프랭클의 책을 거의 읽은것 같다. 
그가 하는 인터뷰나 강연도 유튜브를 통해서 몇번 들었다. 
말에 힘이 느껴지는 듯 했다.

무의식의 신, 원재는 Man's search for ultimate meaning 이다. 
이책에서 의미, ultimate meaning 궁극적 의미는 종교적인 것으로 바라 본다. 

책이 나온 한님성서연구소도 카톨릭책을 주로 다룬다. 
카톨린 전체적으로 빅터프랭클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는것 같다.

 
지금 행복하고자 한다면 행복할수 없다라고 한다. 
책에 '행복은 결과로서 얻어져야 한다. 그것은 추구될수없다. 행복을 좌절시키는 것은 행복을 추구 그 자체이다.' 라고 나온다. 




 

2011년 12월 13일 화요일

소통이란 전달이 아니다.

' 컬럼비아 대학의 한 교수가 했던 말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컬럼비아 대학은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거의 매일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니까요." 그는 1850년대의 남부 노예주인같이 말했습니다. '
사람중심 상담-칼 로저스-

소통이 무엇일까.
한사람은 상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이야기 하고, 상대는 권위에 눌려 듣고 있다면, 이야기 하는 사람이 하고자하는 의도를 상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소통이 전달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이 살고 있다.

전달 받은 사람은 전달 하려 하고, 그 전달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결국 해야만 하는 것만 남게 된다. 해야만 하는 것이 쌓여서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면, 분노가 생기게 된다.
최초 전달하고자 하는 자는 전달 받는 자가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소통이 잘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인내의 한계에 도달해서 전달이 되지 않으면 놀라게 된다.
더욱 강한 힘으로 전달을 한다. 전달 받는 자는 다시 참는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 참을 없는 자가 된다. 결국 상대는 전달받을수 없는 사람이 된다.

전달 받을수 없는 자로 만드는 것이 소통은 아닐것 같다.

2011년 9월 9일 금요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 정치란 관심이다.

밤이 깊어 잠은 오고 정신은 멍하다.
무엇인가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손이 가는 데로 써보기로 하자.
옆으로 눈을 돌리니 미셀푸코의 " 앎의 의지" 라는 책이 보인다. 읽기는 했는것 같은데 책의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뉴스의 일면은 대부분 정치부분이다. 그리고 경제위기일때에는 정치보다 경제기사가 제일 먼저 나온다. 태풍이 왔을때에는 태풍이 일면이고, 올림픽 금매달을 땃을때는 올림픽이 일면이다.
일면의 경우 현재 우리생활에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치는 것이 나온다.
우리가 정치는 불신한다 하고 있더라도 실제 정치가 일반 국민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부분 정치기사가 일면을 장식한다.

과거에는 일반백성에게는 글을 안가르쳤다. 글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중요한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권력이라는 것은 앎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많은 사람이 안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의 권력이 자신들의 권력의 유지를 여렵게 할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항상 정치란 더러운 것,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포장을 한다.
그래야 자신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줄어 들기 때문이다.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아 질수록 권력은 집중된다. 집중된 권력은 속성상 더 큰 권력을 만들려고 한다. 권력은 무한데로 커지지 않는다. 어느순간 썩게된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아 지면, 세상이 혼란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 저기에서 권력들이 충돌하는것 처럼보인다. 곧 권력의 많은 치부들이 드러난다.
정치란 나쁜것, 가까이 가서는 안되는것 이런 논리가 나올때, 그 사회는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시련을 맞이한다.
이순간 정치란 나쁜것, 가까이 해서는 안된는것, 이런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 가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줄어 들고, 권력은 다시 집중이 된다. 그리고 썩는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드러난 치부를 바로 바라보게 되면 그 사회는 혼란스러워 보여도 발전의 동력을 얻게 된다. 바라 본다는것 자체가 치유의 힘을 가진다.
회피한다는 것은 곪는것을 의미한다.

보이는 상처는 치료가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상처는 생명에 지장을 줄수 있다.

정치란 우리의 삶의 규칙을 만드는 과정이다. 어떤 규칙에서 경쟁을 하느냐에 따라서 어떤사람은 유리하고 어떤사람은 불리하다. 규칙을 만들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혼란 스럽다. 혼란스럽더라도 참여해야 한다.
혼란 스러운 과정을 경험하다 보면, 질서가 생겨서 나중에는 혼란스럽지 않은 것이 된다.
규칙에서 소외되는 사람도 줄어 든다. 혼란스럽다라는 것은 질서를 만드는 자연적인 선행요건이다.
혼란스럽다고 그 과정을 없애려고 하면, 질서는 만들어 지지않는다.
혼란스러운 과정을 없애고 만들어진 질서는 강압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혼란을 경험해야 산이 산이 되고 물이 물이 된다.

2011년 8월 28일 일요일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까. 인화가 답인것 같다.

사람들은 왜 정치를 혐오하면서, 각자 지지하는 정치인이 있는 것일까.
'누구나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라는 어느 정도의 생각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타락한 곳이 정치라고 생각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정치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라고 정치를 정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사람이면 나를 잘살게 해줄수 있을 거야, 이런 사람이면 내가 직면한 고통을 이해해 줄수 있을거야..
어찌보면 사람을 살리는 의미를 정치인에게 기대 하고있는지 모를일이다.
자신을 살릴수 있는 사람이 현재는 정치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정치를 하면 좋을 거야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갈등은 왜생길까. A라는 사람이 나를 살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B라는 사람이 A를 공격하면, B는 A와 정치적 경쟁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나를 살려줄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으로 느껴지고 그에게 혐오가 생기게 되는것 같다.

국민이 어느 정치인을 지지 하든, 아마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 하는 정치인을 자신들을 살리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을 가능성이 큰것 같다.
자신을 살린다라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느낌이므로 동일한 행동을 보더라도 각자가 느끼는 상황은 달라지므로 각개인을 지지하는 정치인이 다를수 있다.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하는 것은 자신을 살릴수 있는 사람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공격하는 상대방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잡았을때 스스로 예측하는 미래의 불안정성의 심리적 표현인지도 모를 일이다.

정치는 경쟁이고 경쟁에서 이기는 쪽이 대통령이 된다.
맹자에 '천시(天時)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地利)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이런 말을 본것 같다.

현대 정치에서 천시는 무엇이고, 지리는 무엇일까.
천시란 정치적 선거가 있는 시점의 이슈의 선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많은 분들이 분배라는 이슈가 나(개인)을 살릴수가 있겠구나 했고, 그다음 경제의 성장 자체가 개인을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사람들은 '경제의 성장이 나를 살리는 일이 아닐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것 같다. 그래서 복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나(개인)을 살리는 정치인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 나기 시작한것 같다.

다음 대통령 선거의 시점에서 천시는 '복지'라는 단어를 선점한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될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복지 라는 단어의 선점이 대통령으로 바로 가게 만들수 있을것 같지는 않고, 두개의 세력을 대표할 사람들이 될수 있는 것 같다. 천시를 얻어서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천시를 얻은 사람은 대통령이 되기위한 양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수 있게 하는 키워드가 될것 같다.

그리고 지리는 자신이 살아온 과거인것 같다. 그 과거라는 것은 자신이 태어난 지역 일수도 있고, 자신이 쌓아온 이미지 일수도 있지만 지역적 기반이 중요한것 같다. 두명의 후보가 나오게 되면 그사람들의 지역적 기반이 어디인가에서 지형의 불리함을 가지고 경쟁을 할수도 있고, 유리함을 기반으로 경쟁을 할수도 있게 될것 같다.

마지막이 인화인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인화인것 같다. 앞의 두개에서 앞어가도 인화가 깨어지면 경쟁에서 진다라는 것은 확실하다. 대부분의 승부에서 지리도 중요했지만, 대부분 인화에서 승부가 난것 같다.
두개의 세력이 있는데, 한세력 내부에서 갈등이 있으면, 대선의 승부는 불리하게 돌아간다.
좋은 사례가 아닐수도있지만, 결과적으로 3당 합당이 있었고, DJP 연합이 있었고, 경선에 불복한 경우가 생겨서 인화가 깨어진채 선거가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제 대선을 준비하는 많은 분들이 천시를 얻기 위해 도전을 하게 된다.
천시를 얻기 위해서 서로 경쟁을 하는 도중에 서로 갈등을 하게 될수도 있다. 천시를 얻었지만 인화를 잃어 버려서 큰것을 놓지는 사람이 나올수도 있을 같다.

얻기 위해서 손에 있는것을 놓아야 한다. 인화란 내손에 있는것을 놓는것에서 시작하는 것같다.
아무리 유력하더라도 내손에 있은것을 놓지 못하면, 인화는 깨어진다.

2011년 8월 7일 일요일

단어의 의미 / 독도

무더위, 열대야, 여름, 찜질방, 용광로 이런 단어들을 본다음 팥빙수의 느낌과,
시베리아, 강추위, 배탈, 장염, 냉방병, 이런 단어들을 본다음 팥빙수에 대한 느낌은 조금 다르리라고 여겨진다.

어떤 하나의 이미지/느낌 이라는 것은 앞에서 일어난 것들과 연관을 가지면서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카키고오리' 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 단어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미지가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어떠한 상황에서 하나의 말은 이미지로 만들어 지기도 하고 아무의미가 없는 것으로 지나가기도 한다. 카카고오리라는 일본어가 팥빙수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팥빙수의 이미지를 가질것이다. 아마 각각의 개인은 각각의 다른경험과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팥빙수것에 대한 다른 이미지를 생각해 닐것이다. 팥빙수를 먹어보지도 들어 보지도 못했다면 그냥 아무 의미가 없는 것에겠고...

일반적으로 이런 단어의 이미지 효과를 잘아는 사람들이 정치인으로 성공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봤을때 아무런 의미라 없는 말 '우리가 남이가' 라고 했을때 이 문장이 가지는 의미에대해서 아무런 경험이나 정보가 약할때 그냥 아무 말도 아니게 된다.
그러나 어떤 지역적 상황에서 이말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의미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가 긍정적일때 일정 지역에서는 "우리가 남이가" 라는 단어가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 지역에대한 경험이 없거나 정보가 부족한 경우는 왜? 라는 의문부호를 단다.

재정적자, 초대형쓰나미, 원자력발전소, 가난한 국민, 내각에대한 지지율, 자민당, 일본, 이런 단어들을 들은 다음 독도라는 단어를 놓게 되면, 아마 현재 일본이 독도에 대해 도발을 하는 원인은 자국 국민의 불만을 대외로 돌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 이라고 이미지를 만들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일본내에서는 이러한 단어의 나열 다음에 독도를 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의 단어들 다음에 독도를 넣을것이라고 예측이 가능하다.

언론은 중요하다. 언론은 앞의 단어들을 만들어낸다. 일본국민들이 독도에 대한 이상한 망상을 가지는 것은 일본 언론이나 권력이 독도 앞에 우리가 생각하는 말과 다른 군국주의를 회상할수 있는 단어 다음에 독도를 넣기 때문에 일본 국민이 왜곡된 독도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언론이 갈수록 힘을 가지는 이유가 앞의 단어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기 때문에, 깨어 있지 못하는 개인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고 여기더라도 앞의 단어들에 여향을 받아서 언론이 만들어낸 이미지 속에 같히게 되는 사회로 갈수 있을것 같다.

그래서 서로 대립되는 언론이 필요한것 같다. 조선일보도 필요하고 한겨레신문도 필요하고...
그러나 힘의 균형이 필요한데... 지금 그 힘의 균형이 무너져서 한겨레신문을 좀 사봐야 할것 같다.

오늘도 헛소리를 적어 놓는다.

2011년 5월 22일 일요일

나는 가수다. 좋은 사회

나는 가수다를 보았다.
그들이 그런 능력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을 알릴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능력을 가지고 그냥 있었다.
그러나 무대가 생겼다.
그들의 가진 것들을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열광한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가진능력을 가지고 살아 간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능력을 펼쳐보이지 못하고 살아간다.
무대가 필요하다.

무대는 권력자들이 만든다.
권력의 구조에서 소외된 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펼쳐보일 무대가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된다면...
무대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능력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면...
다양한 능력은 사라지고, 각자의 능력을 갈고 닥는 것이 별로 쓸데없는 짓이 되는 사회가 된다면...
무대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능력이 없어서, 소외된 자들을 사회는 패배자 라고 부른다.

2010년 8월 19일 목요일

지도자는 백성을 항상 할펴야한다.

"평화시에는 모든 사람이 몰려들며, 누구나 충성을 약속하고, 정작 죽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막상 역경에 처해서 정부가 시민들의 봉사를 필요로 할때 지원자는 별로 없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들의 충성도를 시험하는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에, 지극히 위험하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라면 어떠한 상황에처하든지 시민들이 정부와 자기를 믿고 따르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며, 그경우 시민들은 그에게 항상 충성할 것이다."
군주론 제 9장 시민형 군주국 편이 나오는 글이다.

군주론에서 줄창 주장하는것은 시민에게 미움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잘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감정을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도자를 미워하는 시민이 늘어 간다는 것은 지도자가 잘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시민의 수가 늘어 간다는 의미 일 수도 있을것 같다.
지도자가 잘못 된다는 의미는 나라가 발전하지 못한다는 의미일수 있지만, 시민들은 지금 발전을 못하는 것은 자신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다른 지도자가 더많은 발전을 가져다 줄것이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면 새로운 지도자 후보들이 나오게 된다.

지도자가 권력을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일수도 있지만, 지도자가 나라를 발전 시기키 위해서 가장 중요한것은 시민들의 미움을 받지 않은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말로 국민통합이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야지만 진정한 발전이 가능할것 같다.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군주는 백성도 그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며, 백성의 괴로움을 괴로워하는 군주는  백성도 또한 그의 근심거리를 근심하니, 천하 사람의 일을 가지고 즐거워 하며 천하 사람의 근심 거리를 근심하는 데에, 그러면서도 천하에 왕노릇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맹자의 한구절이다.  지도자가 미움을 받지 않을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는것 같다.

세상이 시끄럽다. 권력 주변은 언제나 바뀐다. 그들은 지도자를 보호해주지 못한다.
지도자를 보호하는것은 언제나 시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