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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7일 목요일

마음챙김 명상에 기초한 인지치료 / 우울증 재발 방지를 위한 / 대구흙과씨앗

책의 부제가 ' 재발 방지를 위한 새로운 치료법' 이다.
우울증이 재발이 잘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것 같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에 인지치료가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Aaron T Beck의 '우울증의 인지치료'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우울증의 심리치료 확률은 어떤 학파에 따라서 달라 지는 것보다는 치료하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 진다고 한다.
대상관계이론, 정신역동, 실존분석, 인지분석 이런 기법에 따라서 치료되는 확률이 높아 지는 것이 아니라. 치료자가 누구인가 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얼마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은가?

'마음챙김 명상에 기초한 인치치료' 이 책은 존카밧진의 '마음챙김 명상과 자기치유'를 읽고 난 다음 읽은것 같다.

카밧진의 마음챙김을 보고, 이책을 보는 편이 이해하기 쉬운것 같다.

그런데 자기치유는 역설적으로 자기 마음의 평정을 가져올정도의 의식이 있는 상태여야 한다. 조금 심각한 우울증의 경우 마음챙김을 하기는 어려울것 같다.

우울증에 걸린 환자가 있다면, 환자와 같이 살아 가는 가족이 있다.
환자의 괴로움도 대한 하지만, 환자 가족의 괴로움도 대단할것 같다.
환자가 고립되면 안되는데, 환자의 가족들이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면, 환자는 고립된다.
'내가 상대를 사랑해야지' 이러한 의지는 어떤 불편함에 쉽게 무너질수 있다.
환자는 가족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할수 있고, 가족은 환자를 사랑하지만 외면하고 싶어 질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사랑은 몸의 불편함에 꺽이게 될수도 있다.

마음챙김은 우울증 환자보다는 가족에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때문에 우울증이 왔는가? 환자의 약한 마음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울증은 잘 회복이 안된다.

누구 때문에 우울증의 왔는가? 나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변해야 한다.
가족중에 이렇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치유될 가능성은 높아 진다.

2015년 12월 28일 월요일

아동기 감정양식 / 인격형성에 미치는 / 소울 Saul / 대구 흙과씨앗

Leon J. Saul 은 정신역동을 기반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다.
제목은 '아동기 감정양식'이다.

태어나서 일정 나이때 까지는 느낌으로만 존재한다.
배가 고프면 울고, 아프면 울고, 기분이 좋으면 웃고
그 느낌으로만 존재하는 기간에 사람의 감정양식이 형성된다고 한다.


그 기간동안(임신기부터 4~6세) 충분한 사랑을 받으면, 안정적인 감정이 형성되고, 반대의 경우 불안한 감정양식이 형성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나면서 부터 1살로 친다. 그건 임신기간부터 생명으로 본다.
소울도 감정에 영양을 미치는 기간을 임신의 시작부터 보는 것 같다.
왜 우리나라는 비합리적인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것의 우리의 위대한 유산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릴때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불안하게 된다.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받지 못함에 대한 원망/분노가 동시에 생긴다.
이러한 감정을 양가감정이라고 하는데, 현재의 논리적 구조에서는 잘 알아채기가 힘들다.
많은 에너지를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원망 분노에 쓰기 때문에 다른곳을 바라볼 에너지가 부족하다. 그러면 마음의 문제가 생길수 있다.

정신역동에서는 첫번째 기억을 중요시 여긴다. 그건 그 첫번째 기억속에서 그 사람의 감정양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느냐를 판단 하는 것이다.

도정신분석의 이동식 선생님은 이 감정양식을 핵심감정으로 보시는것 같다.

한번 불안하게 형성된 감정양식은 운명적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동기감정양식' 이책을 천천히 읽어보면 답이 보인다.
이동식 선생님의 '도정신분석입문'을 보아도 무방한것 같다.
오히려 도정신분석입문에 훨씬 쉽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우리는 문화와 전통의 토양속에 살아가기 때문인것 같다.


'아동기 감정양식'을 보다 소울이 쓴 다른책  '정신역동적 정신치료'라는 책이 더욱 자세하다.

이쪽을 공부 하다 보면 프란츠 알렉산더의 교정적 정서체험 '에 대해서 궁금하다.
그런데 번역되어 나온 책이 없다.

빅터프랭클 / 심리요법과 현대인 / 로고테라피 / 대구 흙과씨앗

빅터 프랭클이 발표한 논문들 중에서 로고테라피 관련 부분을 엮어서 만든 책이라고 한다.


이책도 카톨릭 계열의 분도 출판사에서 나왔다.

로고테라피의 경우 역설적인 기법을 많이 사용한다.
그리고 의지를 많이 강조한다.

어떤면에서는 조금 심한 우울증에는 로고테라피가 도움이 될수 없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강조하는 현존재분석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 인것 같기도 하다.

현존재 분석은 굉장히 심각한 환자의 예로 시작한다.  그런데 빅터 프랭클의 실존분석은 삶을 바라 보는 개인철학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가끔 든다.
빅터프랭클이 실존분석이 대중적이다.

개인이 위기 상황에 봉착했을때, 빅터프랭클의 로고테라피가 도움이 될것 같다.
약간은 종교적이다.

책의 표지의 사진을 보면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 오면 사람으로 보이고, 트로피가 먼저 눈에 들어 오면 트로피로 보인다.

나에게 세상이 어떻게 보이느냐?의 물음에서 '내가 보고 있는것이 진리일까?'
그것은 나에게 어떻게 다가와느냐에 따른 주관적 세상보고 있는 것일수 있다.

책의 표지 사진에서 트로피와 사람에서 무엇이 진실인가를 구분하면 어떻게 될까.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서 '진리는 이것이어야 한다.'라는 주장은 객관적 진리일까.


2015년 12월 26일 토요일

빅터프랭클 실존분석과 로고테라피 / 실존 분석의 시작 / 대구 흙과씨앗

국내에 나온 빅터 프랭클의 책을 거의 다 사본것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의미를 찾는다. 
우리는 상대에게 묻는다. '너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가 있는 일인가?' '그건 무슨 의미인데'
의미라는 말이 쓰인다. 

과연 '나는 의미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가?' 
자신에 대한 물음으로도 의미를 찾는다. 


정신분석에서 '의미'를 주로 다루는 쪽을 실존분석이라고 한다. 
실존분석에서는 존재를 다루고, 사물을 존재자 라고 하고, 사물이 나타내는 의미를 존재의미라고 표현한다. 

실존분석에서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다. 

실존분석은 여러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이데거, 빈스방거, 메다드보스 로 이어지는 유럽의 현존재 분석, 
롤로메이 등의 미국의 실존분석,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 상담 또한 약간은 실존적이라고 여겨진다. 
빅터프랭클은 또 다른 실존분석이다. 

감자가 있다. 객관적인 감자는 모두가 안다. 
그리고 사람마다 경험하는 감자가 있다. 주관적 경험이고, 그 경험은 각자에게 의미로 남는다. 
감자는 무엇이어야 한다.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아나라, 
'하나의 감자가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다가온 감자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가' 실존 분석은 '다가온 감자/주관적 감자'에 초점을 맞춘다.  

'세상이 무엇인가' 이렇게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나에게 어떻게 보여 지는가' 여기에 초점을 맞춘 분석이다. 

마션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속의 주인공은 화성에서 감자를 기른다. 
'객관적 감가자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다가온 감자는 어떤 의미일까. 

광장 공포증을 가진 사람이 있다.
일반사람에게는 광장이란 모임의 장소, 산책의 장소 등등의 의미이다.
그런데 공포증으 가진 사람에게 광장은 다른 의미이다. 공포와 불안이 존재하는 곳으로 의미 된다. 

사람은 어떻게 사물을 바라보는가. 그 바라본 사물의 의미는 어떻게 다가오는가. 
실존 분석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 관련글 >

2015년 12월 23일 수요일

빅터프랭클 /태초에 의미가 있었다 / 정신분석 에서 로고테라피 에로 / 분도출판사 / 대구 흙과씨앗

'태초에 의미가 있었다' 
대담형식의 책이다. 


빅터프랭클은 실존주의 정신분석가로 분류되어진다.
실존주의 분석은 두가지 경향이 있다.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빈스방거, 메다드보스의 현존재분석과 샤르트르의 영향을 받은 롤로메이가 있다.

빅터프랭클은 의미를 중심으로 로고테라피라는 치료법을 만들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미는 존재한다. 그 의미를 안다면 혹은 느낀다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위기를 넘을수 있다.  

빅터프랭클의 책들은 분도출판사(카톨릭계열)에서 주로 나오는것 같다.
그러니까 카톨릭에서 프랭클의 사상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 의미이고, 그 관계에서 관심이 있는것 같기도 하다.

같은 실존분석이더라도 현존재분석과 로고테라피는 완연히 다르다.
현존재 분석은 '있는 그대로 보는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약간 불교적 느낌이 강하다.
한국에 현존재 분석을 소개하신 분도 불교에 관심이 많은 정신분석학자 이시고..
로고테라피는 기독교와 가까운 느낌이다. 카톨릭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책에서 빅터프랭클은 행복에 대해서 설명할 때 타고르의 시를 인용한다.
'내가 잠들어 꿈꾸고 있을 때 삶은 기쁨이었더라,
내가 잠 깨어 눈떠보니 삶은 의무였더라.
내가 일을 하고 난뒤에
이제 의무가 기쁨인 줄을 알겠노라'



실존심리학 / 실존적 문제 / 실존주의 심리치료 얄롬 Yalom / 대구 흙과씨앗

사람은 시련을 맞는다.
그 시련에 마음이 무너지기도 하고, 시련을 새로운 삶의 계기로 맞이하기도 한다.

사람에게 다가오는 시련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얼마나 강력하기에 마음이 붕괴하기도 하는가.

얄롬은 그 근본적인 문제를 죽음, 자유, 소외, 무의미 라고 말하고 있다.


실존주의 심리치료라는 책에서 4가지 문제를 다룬다.
제1부 죽음, 제2부 자유, 제3부 소외, 제4부 무의미

그런데 자유가 문제인가 이렇게 여길수도 있다.
자유는 책임감이 따른다. 그 책임감을 감당할수 있는가에서 문제가 생길수 있다.
실제 마음이 약해지면 책임지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활동의 폭이 좁아지고, 자유는 위축된다.
자유와 책임감이라는 관점에서 2부 자유를 다룬다.

책은 철학적이다.

하나의 문제를 하나의 원인에서 찾으려는 과학적 혹은 효율적 접근은 철학적인 실존주의 심리치료의 비효율성을 지적할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람은 어떤 문제 때문에 마음이 붕괴되는가.
모두가 죽는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서 삶을 향한 발걸음은 달라진다.

얄롬은 고전문학을 많은 예로 사용한다.
찰스디킨스의 크리스마트캐롤에서 스크루지는 죽음을 미리 본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은 태어난다.
죽음이 종말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태어남으로서도 기능할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youtube에 가면 yalom의 집단 상담 장면들도 볼수 있다.


( 동영상을 보면서.. 영어를 공부해야 겠구나 절실히 느낀다. )



2014년 4월 27일 일요일

선과 정신분석 - 에히리 프롬 - 1장 오늘날 정신적 위기와 정신분석학의 역할


방금 녹음이 끝나서 유튜브에 등록을 했다.

1장 1장 오늘날 정신적 위기와 정신분석학의 역할

http://youtu.be/ICmO8h1tq_c

이야기를 녹음하자니 생각보다 정리가 잘 안된다.
스크립터를 만들어서 하자니 너무 경직된것 같다.
그래서 전체적인 이야기 틀을 잡고, 해나가야 할것 같다.
안다고 느낀것들도 표현을 하니, 몰랐는데 알았다고 착각한것들이 많이 있는것 같다.

이야기를 하고, 내가 다시들어 보고, 유튜브에 등록하기위해서 다듬과 하는 과정에서 막연한것을 구체적으로 다듬는 과정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보아야 겠다.

2014년 1월 24일 금요일

마음챙김과 심리치료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마음대로 조종할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다. 
의식적으로 하나의 생각에 머무르려고 하면 아주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통제할수 없는 생각이 분노나 불안과 연결되면 마음은 편안하지 못하게 된다.

본인이 통제할 수없는 불안과 분노와 연계된 생각들이 자신을 지배하고, 그에 대한 증상으로 잠을 못자거나, 몸이 아프거나 밖을 나가지 못하거나, 분노를 통제할수 없을때 그러한 것을 마음의 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은 모든것을 만들어낼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상상할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것을 만들어 낼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최악을 마음에서 만들어 내기도한다. 
그런데 그 마음은 본인만이 볼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을 모르고,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마음챙김과 심리치료라는 책이 있다. 부재가 불교명상과 심리학의 만남이다. 


여러명의 저자들이 각자의 전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1부 마음챙김의 의미
2부 치료관계
3부 임상적 적용
4부 과거와 전망

이러한 순서로 나온다. 

불교적 관점이 심리학과 만난다. 과학적이라는 말과 먼것 같은 불교적 관점이 과학적 증명을 통해서 강화되어 지고 있는것 같다. 

서양의 많은 지식인들이 불교적 세계관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과학이 물리지적 세계를 지배해 가고 있는데 반해, 갈수록 마음은 황폐해지고 있기 때문인것 같다. 

마음챙김이라고 말하면 비과학적인것 같다. 
그러나 마음챙김과정을 의학장비로 그 효과를 증명해내고 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미지의 것일때 생각하는 것 보다 더 과학적일수 있다. 

과학적이라는 한계에 빠져버리면, '미지의 것'을 '미개의 것'으로 여기는 우를 범할수도 있다. 

"마음챙김은 두려움이 생길때, 그 두려움에 점차적으로 환자의 주의를 돌리기 위한 기법이며, 친근한 수용의 정도를 증진시키면서 그 두려움을 세밀하게 탐색한다." 책의 한부분이다. 

마음챙김이 인지치료와 결합하고 있다. 그 분야를 MBCT (마음챙김에 기초한 인지치료)하고 한다. 

마음챙김이라는 비과학적일 것 같은 분야가 과학적지지 자료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는 미지의 것에 마음을 열어야 할것 같다. 



2014년 1월 22일 수요일

실존주의 심리치료 / 시련이 공부인 분야이다.

실존주의 하면 철학적이다.
하이데거가 생각나고, 샤르트르가 생각난다.

이책을 보고 Irvin D Yalom의 책들을 찾아 봤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그분이 하는 집단상담동영상도 봤다.

실존주의 하면 어렵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을 보다 몇번 잠들었는지 모르고, 아직도 앞에 몇페이지를 본게 전부다.



이책은 하이데거의 책만큼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이책을 공부하려면 조금 시간을 내어서 집중을 해야 할것 같다.
간단히 읽을 책은 아닌것 같다.

좀더 시간이 있으면 파고 들러 가야한다. (교재로 쓰여진것 같기도 하다)
신프로이트의 정신역동에서 '호나이'나 '프롬'이 나오면 그와 관련되것을 공부해야 하고, 키에르 케고르의 책들도 읽어 보아야 한다.
메다드보스, 빅터프랭클, 칼로저스, 메이 등의책들도 찾아 가면서 읽어야 할것 같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거치면 이 책에 대한 나름대로의 관점이 정립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다.

일반 정신역동교재와 비교하면 이책은 상당히 철학적이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기교만 남는다.
기교는 '어떻게 보이도록 만들뿐이지'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이쪽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은 많은 시련을 경험해야 하는것은 아닌가.
내가 어떤 고통을 모르면, 어떻게 그 고통을 가진 상대방을 공감할수 있을 것인가.

시련이 공부인 분야이다.

2014년 1월 21일 화요일

우울증의 인지치료

"우울하다"라고 했을때 우리는 슬프다 이런 느낌을 받는다.
우울증이라는 말은 서양에서 왔다.

'Depression'이라는 증상을 우울증으로 번역했다.
아래로 눌리워진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우울함은 슬퍼서가 아니라, 뭔가 억압된것이 표출되지 못해서 우울하게 드러 난것을 우울증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우울해" 라고 하는 말과는 다른 느낌이다.

우울증의 상담치료에서 어떤 기법을 사용하든 기본은 대화이다.
치료자와 환자와의 소통이다.
어떻게 소통하느냐는 기법이다.

만약 우울증의 우울이 슬픔이라면 치료는 위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억압되어 있다면 위로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억압된것을 드러낼수 있도록 도와 주는 거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것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낼수 없다.
일단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만약 억압된것이 사회적 터부일때 드러 낸다는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 된다.

치료는 대화가 기본이다.
대화가 되기위해서 "라포를 형성하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게 말할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우울증의 인지치료라는 책을 샀었다.
이책을 달달 외운다고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닌것 같다.
달달외우고 다른 사람에게 "나는 전문가다" 이렇게 말할수 있다.
그리고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이책을 본다고 우울증이 낮는것은 아니다.
왜냐 억압된것이 드러 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인데, 책에다 억압을 드러 낼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책은 좋은책이다.
그러나 내가 공부하고 있는 방향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한번 읽어 본것이 전부이다
여기서도 중요한것은 사람에 대한 이해이다.
어느 기법이든 근본은 같은것 같다.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공부하다 보면 사람을 이해하는것은 접어두고,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기법을 공부하는 경향이있다.
그래야 뿌듯하다.  그냥 뿌듯할 뿐일수도 있다.


2014년 1월 20일 월요일

도정신치료 입문 ; 핵심감정이란

이책을 사서 여러번 읽은것 같다.
읽고 있으면 알것 같고, 그렇구나 이런 느낌이 든다.
한번 읽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으면 다른 느낌든다.
알것 같다는 느낌, 그게 함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 뒷표지에 "도정신치료의 정수는 치료자의 인격으로써 동토에서 떨고 있는 환자에게 봄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라고 나온다.
아주 간단하다..
누군가 "도정신치료가 무엇인지 아는 것인가" 묻는다면 위의 내용을 그대로 말할수 있다.
그러면 그것이 아는것인가.
안다고 했는데 동토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봄을 가져다 줄수 없으면 그것이 아는것인가?

처음에 읽을때 안다는 것을 문장을 이해하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인격을 수양하기 위해서 평생을 바쳐도, 이책에서 요구하는 인격의 수준에 맞출수 있을지는 어렵다.
나도 서양식의 교육에 익숙해져서, 앎과 실천을 분리해서 보았다.
그런데 이동식 선생님이 이야기 하는 것은 앎과 실철은 분리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말하시는것 같다.

장자에 수레바퀴를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핵심은 전달해줄수 없다고 한다. 결국 핵심은 스스로 깨닫는것이라고 한다.
이책을 아무리 달달 외운다고 해도, 아무것도 배운것이 없을수도 있을것 같다.
"환자에게 봄을 가져다 준다." 에서 봄을 자비심이라고 한다.
자비심을 네이버에 검색하면
" [명사]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남보다 낮추어 보거나 못하다고 여기는 마음. "으로 나온다.
자비심이 무엇인지 안다고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이 달라지는가? 아무것도 달라 지지 않는다. 배우는 사람이 자비심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자비심을 기르기 위해서 몇년이 걸릴까. 평생이 걸려도 상대에게 봄을 가져다줄 정도의자비심의 수준이 되지 않을수 있다.

이책은 굉장히 어려운 책이다. 왜냐하면 읽는 사람이 '도를 닦아야한다'고 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읽는 사람이 자신을 수양하지 않으면 이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수도 있다.
단지 자신의 지적 수준의 허영에 만족하는 정도밖에는...
나도 지적 허영에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책을 보면서 (비로 지적허영이라고 하더라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책에서 언급되는 사람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는것이다.

이책은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그런데 빅터프랭클의 책을 보면 기독교적인 색채가 아주 강하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은 불교라는 커다란 문화의 기반속에서 자라 났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마음에 형성된 무의식은 불교적 혹은 무속적이다.
융의 집단무의식이라고 해야하나...

만약 이책에 나오는 "실례"를 칼 로저스가 남김 것처럼 오디오 혹은 비디오 파일로 볼수 있다면, 엄청 도움이 될수 있을것 같다.

이책을 보면서.. 다른 외국의 대가들 메다드보스, 소울, 빅터프랭클, 알랙산더, 호나이 등등의 저작과 비교해도 대등한것 같다.
한국사람에 맞는 걸로 치면 더욱 수준이 높은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같은 아마추어가 무엇을 알겠는가  싶지만...)

2014년 1월 18일 토요일

소유냐 존재냐 , 어렵다.

10년도 전에 구매했던 책이다.


한때 에이히 프롬의 책을 거의 다 읽었던것 같다.
그때는 읽으면서 이해했던것 같은데, 지금 그책들을 보면 그때는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해하는 것고 다시 10년이 지나서 읽어서 이해하는 것이 다를것 같다.

책을 보니가. 2001년에 구매했었는데 , 왜 원서를 구매했을까. 지금도 어려운데..

10여년전에는 에히리프롬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한축으로 사회를 변혁을 추구하는 학자로 이해했던것 같다.

그런데 지금 자세히 프롬의 책들을 보면 사람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중심인것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필요한것은 무엇인가.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를 원하고, 풍족하게 쓸수 있는 돈이 필요하고, 누군가 나의 말을 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축약해서 말하면 명예, 돈, 권력으로 축약된다.
무엇을 가짐으로써 행복에 도달할수 있다라고 할수 있다.
현대를 살아 가는 누군가도 여기서 벋어나서 살아가기가 힘들다.
권력을 나쁘다고 말하지만, 누군가 나의 말을 들어 주기를 원하고,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최선을 하다고,
명예가 허위라고 하지만, 나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우리마음에는 정확하게 정의된 명사 '명예' "돈" "권력"이 들어 있는것이 아니라, 그 내용들을 체험으로 들어 가있다.
내가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것 같지만, 그러한 명예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명예를 위한 행동이라고 정확하게 인식하기는 어렵다.

어떤 삶의 존재양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기때문에 당연화 되어 있고, 무의식화 되어 있다.
그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To have or To be / 삶이냐 존재냐로 번역이 되어있다.

우리는 무엇인가 가지고 싶어한다.
그게 안되면 좌절을 느낀다. 좌절은 불안을 만들고, 불안은 분노를 만든다.

더 가지고 싶다. 우리 마음속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마음이 있다.

그런데 아무 많이 가져도 우리마음을 다 체울수 없다.
즉 To have  소유라는 삶의 방식의 궁극적 한계이다.

소요하려고 하지 않는 방식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무소유라는 책이 삶의 변화시키는 책으로 받아 들여졌고, 법정스님을 많은 사람들이 존경했었다.
더불어 존재하는 방식그것을 프롬은 To Be로 표현한다.
가질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

더높은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산이 높던지 말던지, 산을 오르면서 느끼는 즐거움에 취한 사람도 있다.
더높은 산을 올라야지 하면, 낮은 산은 항상 불만이다.
제일 높은 산을 올라 봤자. 뭐가 남겠는가.
삶의 한순간 한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그게 도에 이르는 길이고, 구원의 길이 아닐까..



2014년 1월 17일 금요일

신경에 사로잡힌 뇌, 나는 자동화 되어 있는가.

'신경에 사로잡힌 뇌'


'인식-처리-출력'이러한 순서로 사물을 인지한다.
우리가 무엇을 인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자동화 되어있다.
사과를 보면 순식간에 침이 고이던지, 혹은 아이폰이 생각난다.
뉴런과 뉴런이 연결되어서 하나의 신경경로가 만들어지고, 그 것들이 커다란 신경계를 형성한다.
이책은 자동화된 반응에서 벋어나는 것을 이야기한다.
호흡법, 마음챙김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것 같다.

이것이 동양적 전통 - 명상, 호흡법, 마음챙김- 이 과학과 접목되는 현장인것 같다.
서양적 치료의 한계를 동양적인 것과 접목함으로써 한단계를 도약하고 있다라고 여겨진다.

신경계에 의해서 자동화 되어 반응한다면, 곳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나'라는 존재이다.
'나'는 뇌가 지배하는 영역을 넘어서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겟다.

자동반응화된 신경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면 더 힘들어 질수 있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잠을 자려고 노력하면 더욱 잠이 안온다.
그때는 반대로 생각하는 거다.
'빅터프랭클'은 역설치료하고 했다.
그는 고통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기때문에 더욱 고통스럽다고 한다.

이 치료법보다는 작은 나무 한그루를 정성을 다해 심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해소될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경계는 고통이라는 단어보다는 '어떻게 나무를 살릴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찰 것 같다.

2012년 5월 11일 금요일

장자 제물론 8장 / 내담자 중심 상담

"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말에는 말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만약 말해지는 바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면, 말은 실제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은 말이 갓난새의 삐약거리는 소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차이가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도가 무엇에 의존하기에 참과 거짓이 생겼나? 말이 무엇에 의지하기에 옮고 그름이 생겼나? 어떻게 도가 사라져서 존재하지 않을수가 있는가? 어떻게 말이 존재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을수 있는가? 도가 작은 성취에 의지하고 말이 헛된 겉치레에 의지할때, 유가가 말하는 옳고 그름과 묵가가 말하는 옮고 그름이 있게 된다. 한쪽에서 옳다고 하는 것을 다른 쪽에서는 그르다고 하고, 한쪽에서 그르다고 하는것을 다른 쪽에서는 옳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르다고 하는 것을 옳다하고, 그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그르다고 하고 싶다면, 그때 이용할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밝음이다. " 로버트 엘린슨의 장자 영혼변화를 위한 철학

서구 학자의 제물론 8장의 해석이다. 동양적인 해석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는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해석은 우리틀속에서 장자를 보는것이고, 그의 해석은 그의 틀속에서 장자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말을 들을때 내생각을 기준으로 판단을 한다. 그래서 이말은 맞고 저말은 그르다라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사고를 하는 사람은 같은 편처럼 느껴지고, 나와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정치현상을 보았을때, 극단적으로 느껴진다. 화해 불가능 하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내가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들을때 어떤 말들은 귀에 거슬리고, 어떤 말들은 분노를 만들어 낸다.

칼로저스이 내담자 중심 분석에서는 듣는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듣되 나를 비운체 듣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듣는 사람은 자신을 비울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의 말에 분노 느끼고, 연민도 느끼고, 불안도 느끼게 되므로, 상대방에 말에 빠져 들어가든지,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 지시적이 된다.

위의 장자 구절에서 밝음(明)을 통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 메다드 보스의 현존재 분석에서도 내담자가 가진 모든 것이 드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드러남은 밝음에서 드러난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판단하고 있다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약자라면, 듣는 사람의 판단 기준에 따르려고 노력할것이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자신을 완전히 드러낼수 없다.
최악의 경우 듣는사람이 원하는 말만을 할수도 있다.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말에는 말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아무리 어떤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도 그 이상한 소리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있는것이다. 아기는 아플때 어떤 의사표시를 한다. 그러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알아 듣기 힘들다. 그러나 아기는 이야기 하고 있다. 엄마는 그이야기를 알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아기의 관점에서 듣는다.

어떤 마음이 힘든사람들은 때로는 이상한 소리를 할때가 있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의 혹은 그녀의 관점에서는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말이 안되는 말을 하느냐고 한다.
그래서 그사람은 고립된다. 듣는 사람의 틀에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자신의 감정과 외부와의 차이는 커지게 된다.

완전한 밝음 속에서는 모든것들이 실존하는 것이 보인다.

듣는 사람이 밝음을 기준으로 판단 할수 있으면, 말하는 사람이 편해지고, 말하는 사람이 밝음을 기준으로 이야기 하면 듣는 사람이 편해진다.

'밝다'  라는 것을 알기도 어려운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도 나이 60에 이순에 이르렀다 했으니...

귀가 순한 사람이 칼로저스 처럼 뛰어난 상담자가 될수 있는것 같다...

2012년 2월 24일 금요일

장자, 빅터프랭클 .. 장주 나비가 되다.

장자를 읽고 있다.
제물론의 마지막 편에 장주가 나비가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깨어 있는 장주도 장주의 세계이고, 꿈속의 나비도 장주의 세계이다.
내가 현실이 꿈인지 의심하게 되더라도, 꿈은 나의 세계이고,
현실속의 '나'라고 하더라도, 세상은 내가 바라 보는 세계이고,
살아 있는한 나를 둘러싼 현실에서 벗어날수 없다.

장자는 현실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현실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같다.
그기쁨은 현실의 보이는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초월한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존재 분석의 맥락에서 자신에게 느껴지는 모든것은 자신의 현실이며, 그 현실을 바라보고, 나의 것으로 받아 들일때, 자신의 고통들을 초월할수 있다고 하는것 같다고 느껴 졌었는데,
현존재분석을 읽을때는 잘 이해 되지 못하던 것이 장자를 읽으므로서 이해 되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이해되어 지는것 같다.

빅터프랭클의 로고테라피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 장자가 말하는 이야기의 테두리 내에 있다는 느낌이든다.

2011년 11월 20일 일요일

빅터 프랭클의 '의미를 향한 소리없는 절규'

"이른바 자아실현이란 자아 초월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남아야 한다. 자아실현을 의도적 목표로 삼는 것은 자기 파괴적이고, 자멸적인 것이다. 자아실현도 실상은 정체성과 행복에 집착한다. 행복을 없애는 것은 바로 '행복에 대한 추구'이다. 우리가 행복에 집착할수록 더 많은 행복을 놓치게 된다. 성적 신경질환은 하나의 결과이다. 남성환자가 자신의 잠재성을 끌어내 보이려 하면 할수록 더욱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여성환자가 오르가즘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주고 싶어하면 할수록, 불감증에 귀착할 가능성이 더 높다. "
빅터 프랭클의 '의미를 향한 소리없는 절규' 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

빅터 프랭클은 자신을 초월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미가 필요하다고 한다.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의미가 부여되진 대상을 향해 나아 갈때 행복은 부수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무의미와 마주친다.
무의미는 불안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 보면 의미들이 있다. 가족이다.
내가 사랑한다고 느낄때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자신을 초월해서 살아 가는 삶 그것은 사랑을 추구 하는 삶이 아닐까. 내가 부모님을 사랑하면 그게 의미가 되는것이고, 내가 부인의 사랑하면 그게 의미가 되는 것이고, 자식을 사랑하면 그게 의미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살아 가면서 잊어 버린다. 의미는 가까운데 있는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