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서 - 헤르만 헷세 -
안개속을 거닐면 신기하여라!
숲이며 돌은 모두가 외로움에 잠겨서
나무마다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혼자 있구나.
나의 인생이 아직 밝았을 때는
이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 차 있었건만
이젠 안개가 내리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구나.
어쩔수 없이 모든 것에서 조용히
사람을 떼어 놓는 그 어두움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하지 못하도다.
안개속을 거닐면 신기하여라!
인생은 고독한 것.
사람들은 서로를 모르고 산다.
모두가 혼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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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다닐때 헤르만헷세에 빠져 그의 소설을 거의 다 읽었었다.
단한가지 유리알유희만은 이해가 어려워서 다 잃지 못했었다.
소설을 읽는 것이 사치로 느껴져서 요즈음은 통 소설책을 읽지않는다.
세상은 모든 현상은 혼자 느끼는 것이다. 느끼는 사람이 말하기 전에는 본인 말고는 아무도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각자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자신이 느끼는 데로 반응하며 살아간다.
문화에 따라서 비슷하게 반응을 하지만, 기쁨과 고통과 즐거움과 분노는 자신의 몫이다.
'이세상에 친구들로 가득 차 있었건만..
이젠 안개가 내리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 구나'
안개가 내리면 친구들도 사라지지만, 나도 누군가의 친구들중의 하나이다.
친구들이 사라 졌다고 원망할수 없다. 나도 그들 옆에 있을수 없기 때문이다.
안개가 내리면 각자 혼자될수 밖에 없다.
혼자라는 것은 두려운것이다. 그래서 피하려고 한다.
'그 어두움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하지 못하도다.'
어느순간 (안개가 내리면) 혼자 일수 밖에 없는데...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2012년 5월 15일 화요일
변하다..
변하기 위해서 먼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늦잠을 자는 것을 포기해야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 노는 것을 포기해야한다.
포기하지 않고, 변하려고 하니, 변하지 못하는 것같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늦잠을 자는 것을 포기해야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 노는 것을 포기해야한다.
포기하지 않고, 변하려고 하니, 변하지 못하는 것같다.
2012년 5월 14일 월요일
하나님 존재의 증명
초등학생이 있다. 초등학생에게 사람이 어떻게 걷는지 설명해보라고 질문을 하면 설명하지 못한다. 걷는 메커니즘은 나도 설명하지 못한다.
과학자가 있가. 걷는 매커니즘에대해서 확실히 알고 있고, 설명할수 있다. 그리고 그 매커니즘으로 걸을수 있는 로봇도 만들었다.
그러나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한번도 걸어본적은 없다.
설명을 못하지만 걸을수 있는 사람과 설명을 할수 있지만 걷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걷는 사람은 태어나서 몇년 동안 시행착오를 통해서 걷는 방법을 배운사람이고, 그러나 그 매커니즘에 대해서는 설명할수 없다.
걷는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는 몇년동안 연구를 해서 걷는 매커니즘을 알고 설명을 할수 있다.
걸을수 있는 초등학생과 설명할수 있는 과학자중에 누가 걷는 것을 안다고 해야 할까.
수천년동안 신을 믿어 왔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 지금도 믿고 있다.
그러나 신을 누구도 완벽히 설명할수는 없다.
설명할수 없기 때문에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에는 설명할수 없는 많은 현상들이 발생한다.
설명할수 없기 때문에 거짓,허구, 지어낸것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학책에서는 우리은하계의 그림이 나온다. 아무도 우리 은하의 전체를 보지 못했다.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우리 은하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책에 나오는 우리은하계는 상상화다. 우리은하계의 그림을 보고 허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과학책에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설명할수 없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기도 하고, 설명할수 없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믿기도 한다.
많은 믿음들이 권위에 의존한다. 종교가 권위가 있을때는 종교가 말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과학이 권위가 있을때는 과학이 말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는 걷는 것을 설명해낼수는 없지만, 걷는 방법을 안다. 설명할수 없다고 모른다고 할수는 없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할수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여기에(Here and Now)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가 있가. 걷는 매커니즘에대해서 확실히 알고 있고, 설명할수 있다. 그리고 그 매커니즘으로 걸을수 있는 로봇도 만들었다.
그러나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한번도 걸어본적은 없다.
설명을 못하지만 걸을수 있는 사람과 설명을 할수 있지만 걷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걷는 사람은 태어나서 몇년 동안 시행착오를 통해서 걷는 방법을 배운사람이고, 그러나 그 매커니즘에 대해서는 설명할수 없다.
걷는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는 몇년동안 연구를 해서 걷는 매커니즘을 알고 설명을 할수 있다.
걸을수 있는 초등학생과 설명할수 있는 과학자중에 누가 걷는 것을 안다고 해야 할까.
수천년동안 신을 믿어 왔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 지금도 믿고 있다.
그러나 신을 누구도 완벽히 설명할수는 없다.
설명할수 없기 때문에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에는 설명할수 없는 많은 현상들이 발생한다.
설명할수 없기 때문에 거짓,허구, 지어낸것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학책에서는 우리은하계의 그림이 나온다. 아무도 우리 은하의 전체를 보지 못했다.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우리 은하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책에 나오는 우리은하계는 상상화다. 우리은하계의 그림을 보고 허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과학책에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설명할수 없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기도 하고, 설명할수 없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믿기도 한다.
많은 믿음들이 권위에 의존한다. 종교가 권위가 있을때는 종교가 말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과학이 권위가 있을때는 과학이 말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는 걷는 것을 설명해낼수는 없지만, 걷는 방법을 안다. 설명할수 없다고 모른다고 할수는 없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할수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여기에(Here and Now)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5월 11일 금요일
장자 제물론 8장 / 내담자 중심 상담
"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말에는 말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만약 말해지는 바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면, 말은 실제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은 말이 갓난새의 삐약거리는 소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차이가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도가 무엇에 의존하기에 참과 거짓이 생겼나? 말이 무엇에 의지하기에 옮고 그름이 생겼나? 어떻게 도가 사라져서 존재하지 않을수가 있는가? 어떻게 말이 존재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을수 있는가? 도가 작은 성취에 의지하고 말이 헛된 겉치레에 의지할때, 유가가 말하는 옳고 그름과 묵가가 말하는 옮고 그름이 있게 된다. 한쪽에서 옳다고 하는 것을 다른 쪽에서는 그르다고 하고, 한쪽에서 그르다고 하는것을 다른 쪽에서는 옳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르다고 하는 것을 옳다하고, 그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그르다고 하고 싶다면, 그때 이용할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밝음이다. " 로버트 엘린슨의 장자 영혼변화를 위한 철학
서구 학자의 제물론 8장의 해석이다. 동양적인 해석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는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해석은 우리틀속에서 장자를 보는것이고, 그의 해석은 그의 틀속에서 장자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말을 들을때 내생각을 기준으로 판단을 한다. 그래서 이말은 맞고 저말은 그르다라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사고를 하는 사람은 같은 편처럼 느껴지고, 나와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정치현상을 보았을때, 극단적으로 느껴진다. 화해 불가능 하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내가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들을때 어떤 말들은 귀에 거슬리고, 어떤 말들은 분노를 만들어 낸다.
칼로저스이 내담자 중심 분석에서는 듣는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듣되 나를 비운체 듣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듣는 사람은 자신을 비울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의 말에 분노 느끼고, 연민도 느끼고, 불안도 느끼게 되므로, 상대방에 말에 빠져 들어가든지,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 지시적이 된다.
위의 장자 구절에서 밝음(明)을 통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 메다드 보스의 현존재 분석에서도 내담자가 가진 모든 것이 드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드러남은 밝음에서 드러난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판단하고 있다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약자라면, 듣는 사람의 판단 기준에 따르려고 노력할것이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자신을 완전히 드러낼수 없다.
최악의 경우 듣는사람이 원하는 말만을 할수도 있다.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말에는 말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아무리 어떤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도 그 이상한 소리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있는것이다. 아기는 아플때 어떤 의사표시를 한다. 그러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알아 듣기 힘들다. 그러나 아기는 이야기 하고 있다. 엄마는 그이야기를 알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아기의 관점에서 듣는다.
어떤 마음이 힘든사람들은 때로는 이상한 소리를 할때가 있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의 혹은 그녀의 관점에서는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말이 안되는 말을 하느냐고 한다.
그래서 그사람은 고립된다. 듣는 사람의 틀에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자신의 감정과 외부와의 차이는 커지게 된다.
완전한 밝음 속에서는 모든것들이 실존하는 것이 보인다.
듣는 사람이 밝음을 기준으로 판단 할수 있으면, 말하는 사람이 편해지고, 말하는 사람이 밝음을 기준으로 이야기 하면 듣는 사람이 편해진다.
'밝다' 라는 것을 알기도 어려운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도 나이 60에 이순에 이르렀다 했으니...
귀가 순한 사람이 칼로저스 처럼 뛰어난 상담자가 될수 있는것 같다...
서구 학자의 제물론 8장의 해석이다. 동양적인 해석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는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해석은 우리틀속에서 장자를 보는것이고, 그의 해석은 그의 틀속에서 장자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말을 들을때 내생각을 기준으로 판단을 한다. 그래서 이말은 맞고 저말은 그르다라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사고를 하는 사람은 같은 편처럼 느껴지고, 나와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정치현상을 보았을때, 극단적으로 느껴진다. 화해 불가능 하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내가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들을때 어떤 말들은 귀에 거슬리고, 어떤 말들은 분노를 만들어 낸다.
칼로저스이 내담자 중심 분석에서는 듣는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듣되 나를 비운체 듣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듣는 사람은 자신을 비울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의 말에 분노 느끼고, 연민도 느끼고, 불안도 느끼게 되므로, 상대방에 말에 빠져 들어가든지,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 지시적이 된다.
위의 장자 구절에서 밝음(明)을 통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 메다드 보스의 현존재 분석에서도 내담자가 가진 모든 것이 드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드러남은 밝음에서 드러난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판단하고 있다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약자라면, 듣는 사람의 판단 기준에 따르려고 노력할것이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자신을 완전히 드러낼수 없다.
최악의 경우 듣는사람이 원하는 말만을 할수도 있다.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말에는 말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아무리 어떤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도 그 이상한 소리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있는것이다. 아기는 아플때 어떤 의사표시를 한다. 그러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알아 듣기 힘들다. 그러나 아기는 이야기 하고 있다. 엄마는 그이야기를 알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아기의 관점에서 듣는다.
어떤 마음이 힘든사람들은 때로는 이상한 소리를 할때가 있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의 혹은 그녀의 관점에서는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말이 안되는 말을 하느냐고 한다.
그래서 그사람은 고립된다. 듣는 사람의 틀에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자신의 감정과 외부와의 차이는 커지게 된다.
완전한 밝음 속에서는 모든것들이 실존하는 것이 보인다.
듣는 사람이 밝음을 기준으로 판단 할수 있으면, 말하는 사람이 편해지고, 말하는 사람이 밝음을 기준으로 이야기 하면 듣는 사람이 편해진다.
'밝다' 라는 것을 알기도 어려운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도 나이 60에 이순에 이르렀다 했으니...
귀가 순한 사람이 칼로저스 처럼 뛰어난 상담자가 될수 있는것 같다...
라벨:
실존심리학,
장자,
칼로저스 / 내담자중심상담
2012년 5월 10일 목요일
칼로저스 공식사이트 / Miss Mun 사례
칼 로저스의 공식 사이트
http://www.carlrogers.info/index.html
사이트에서 볼수 있는 내용
폴틸리히와의 인터뷰
유명한 Miss Mun 사례와 여러 상담 사례를 동영상으로 제공.
칼로저스 인터뷰등등...
칼로저스의 상담사례을 보면 내담자의 감정선을 읽으면서 내담자가 담아두면서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말할수 있도록 하는것 같다.
일반적으로 말을 할때 상대방에게 어느정도 까지를 말을 해야할까의 범위를 설정한 채 말을 한다. 그래서 모든 말을 다할수 없다. 칼로저스는 그러한 분위기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것 같다. 들어 보면 별것도 아닌것 같지만, 내담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칼로저스의 마음에 편안함을 느낀다.
내담자가 칼로저스와 상담을 하면서(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알아가는 것 같다. 칼로저스는 지시를 통해서 혹은 권위를 통해서 상대방의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느끼고, 자신의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칼로저스는 도와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영어가 딸려서 자세히는 알아 듣지 못하지만 그런 느낌이다.
칼로저스 공식 사이트에서 사례들을 여러차례 반복해서 본다면, 간접경험을 통해서 칼로저스의 사상의 이해의 폭을 좀더 넓힐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http://www.carlrogers.info/index.html
사이트에서 볼수 있는 내용
폴틸리히와의 인터뷰
유명한 Miss Mun 사례와 여러 상담 사례를 동영상으로 제공.
칼로저스 인터뷰등등...
칼로저스의 상담사례을 보면 내담자의 감정선을 읽으면서 내담자가 담아두면서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말할수 있도록 하는것 같다.
일반적으로 말을 할때 상대방에게 어느정도 까지를 말을 해야할까의 범위를 설정한 채 말을 한다. 그래서 모든 말을 다할수 없다. 칼로저스는 그러한 분위기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것 같다. 들어 보면 별것도 아닌것 같지만, 내담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칼로저스의 마음에 편안함을 느낀다.
내담자가 칼로저스와 상담을 하면서(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알아가는 것 같다. 칼로저스는 지시를 통해서 혹은 권위를 통해서 상대방의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느끼고, 자신의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칼로저스는 도와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영어가 딸려서 자세히는 알아 듣지 못하지만 그런 느낌이다.
칼로저스 공식 사이트에서 사례들을 여러차례 반복해서 본다면, 간접경험을 통해서 칼로저스의 사상의 이해의 폭을 좀더 넓힐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라벨:
칼로저스 / 내담자중심상담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해리현상 : 정신적 신경생물학적 보호 매커니즘이다
"대형교통사고를 당하고 몇년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생긴 위의 환자는 치료를 받으면서 사고 당시 일어난 중요한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환자는 당시 두 차량이 충돌한뒤 얼마동안 의식을 잃었고 의식을 다시 찾았을때는 자신의 몸과 의식이 분리되어 있었다. 마치 모든 상황을 몸 밖에서 체험하는 듯했다. 환자는 공중에 붕 뜬 느낌으로 주위에 선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물었다.
이런현상은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도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정신적으로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실제 견딜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에게서 이탈하는 현상을 해리(dissociation)라고 부른다."
" 해리는 정신적 신경생물학적 보호 매커니즘이다. 해리의 목적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소하거나 제거하는데 있다. 해리의 정신적, 생물학적 생성방식에 대해서 제기된 지식들은 최근에 들어서야 밝혀지기 시작한것들이다."
" 해리현상은 트라우마의 경험에 관계없이 일상에서도 약하게 나타날수 있다. 정신적관점에서 볼때 해리는 현재의 상태에서 이탈하기, 정체성과 거리두기, 일종의 자기 부재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관찰할수 있는 가벼운 형태의 해리는 바로 깨어있는 상태에서 꾸는 백일몽이다. 이럴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무슨일을 했지만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정도가 심한 해리의 경우는 낯설거나 '마비된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를 들수 있다. 이럴경우 상황이나 육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이른바 '탈현실화' 혹은 '탈인격화의 느낌이다.
건강한 사람도 때로 이런 느낌을 경험한다. 특히 지나치게 피곤하거나 너무 큰 부담을 느낄때 그런 경우가 찾아온다. "
" 해리는 일반적으로 불안과 결부된 신호에 의해서 유발된다. 이 신호는 제삼자에 의해서는 종종 지각될수 없다. "
"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순간 엔도르핀이 뇌에서 마비시키는 것은 '객관적'통증 신호가 아니라 감정의 관여부분이다. 감정의 관여가 마비되고 의식이 현실에서 이탈하는 현상은 해리성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에게서도 발견할수 있다. 환자는 자신의 몸과 분리된 느낌이 든다. 트라우마 상황에서는 이것이 '마지막 구원'인 셈이다. 여기서 해리는 견딜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 남도록 '도와주는' 셈이다."
요하임 바우어의 '몸의기억' 중의 해리에 관한 부분이다.
이런현상은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도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정신적으로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실제 견딜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에게서 이탈하는 현상을 해리(dissociation)라고 부른다."
" 해리는 정신적 신경생물학적 보호 매커니즘이다. 해리의 목적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소하거나 제거하는데 있다. 해리의 정신적, 생물학적 생성방식에 대해서 제기된 지식들은 최근에 들어서야 밝혀지기 시작한것들이다."
" 해리현상은 트라우마의 경험에 관계없이 일상에서도 약하게 나타날수 있다. 정신적관점에서 볼때 해리는 현재의 상태에서 이탈하기, 정체성과 거리두기, 일종의 자기 부재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관찰할수 있는 가벼운 형태의 해리는 바로 깨어있는 상태에서 꾸는 백일몽이다. 이럴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무슨일을 했지만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정도가 심한 해리의 경우는 낯설거나 '마비된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를 들수 있다. 이럴경우 상황이나 육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이른바 '탈현실화' 혹은 '탈인격화의 느낌이다.
건강한 사람도 때로 이런 느낌을 경험한다. 특히 지나치게 피곤하거나 너무 큰 부담을 느낄때 그런 경우가 찾아온다. "
" 해리는 일반적으로 불안과 결부된 신호에 의해서 유발된다. 이 신호는 제삼자에 의해서는 종종 지각될수 없다. "
"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순간 엔도르핀이 뇌에서 마비시키는 것은 '객관적'통증 신호가 아니라 감정의 관여부분이다. 감정의 관여가 마비되고 의식이 현실에서 이탈하는 현상은 해리성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에게서도 발견할수 있다. 환자는 자신의 몸과 분리된 느낌이 든다. 트라우마 상황에서는 이것이 '마지막 구원'인 셈이다. 여기서 해리는 견딜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 남도록 '도와주는' 셈이다."
요하임 바우어의 '몸의기억' 중의 해리에 관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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