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그 만큼 내가 착해져야한다.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해리현상 : 정신적 신경생물학적 보호 매커니즘이다
이런현상은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도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정신적으로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실제 견딜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에게서 이탈하는 현상을 해리(dissociation)라고 부른다."
" 해리는 정신적 신경생물학적 보호 매커니즘이다. 해리의 목적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소하거나 제거하는데 있다. 해리의 정신적, 생물학적 생성방식에 대해서 제기된 지식들은 최근에 들어서야 밝혀지기 시작한것들이다."
" 해리현상은 트라우마의 경험에 관계없이 일상에서도 약하게 나타날수 있다. 정신적관점에서 볼때 해리는 현재의 상태에서 이탈하기, 정체성과 거리두기, 일종의 자기 부재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관찰할수 있는 가벼운 형태의 해리는 바로 깨어있는 상태에서 꾸는 백일몽이다. 이럴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무슨일을 했지만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정도가 심한 해리의 경우는 낯설거나 '마비된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를 들수 있다. 이럴경우 상황이나 육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이른바 '탈현실화' 혹은 '탈인격화의 느낌이다.
건강한 사람도 때로 이런 느낌을 경험한다. 특히 지나치게 피곤하거나 너무 큰 부담을 느낄때 그런 경우가 찾아온다. "
" 해리는 일반적으로 불안과 결부된 신호에 의해서 유발된다. 이 신호는 제삼자에 의해서는 종종 지각될수 없다. "
"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순간 엔도르핀이 뇌에서 마비시키는 것은 '객관적'통증 신호가 아니라 감정의 관여부분이다. 감정의 관여가 마비되고 의식이 현실에서 이탈하는 현상은 해리성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에게서도 발견할수 있다. 환자는 자신의 몸과 분리된 느낌이 든다. 트라우마 상황에서는 이것이 '마지막 구원'인 셈이다. 여기서 해리는 견딜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 남도록 '도와주는' 셈이다."
요하임 바우어의 '몸의기억' 중의 해리에 관한 부분이다.
2012년 4월 19일 목요일
우울증을 향해 방향을 튼다. / 너는 용납되었다
각자의 상황은 다 다르다.
부모가 자식에서 '너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고 강하게 말할때, 자식은 드러나지 못한다.
부모의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무게에 눌러 자신은 드러 나지 못한다.
왜곡되어져 자라게 된다.
사회의 강력한 논리가 개인을 누를때 사회속의 개인은 자신을 드러낼수 없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 가는 개인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세상은 정보와 되어 엄청나게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의 잘못이 바로 인터넷을 타고 휴대폰을 타고, 세상에 드러난다. 엄청난 비난이 빛발친다.
각 개인들은 비난을 하면서도 그게 내가 될수 있다라고 조심한다.
개인의 강력한 논리는 그 개인의 무의식을 누른다.
비도덕적인 타인을 비난하면서 비난의 대상이 자신이 될수 있다는 엄청한 두려움도 같이 느낀다. 그 느낌은 드러 나지 않고, 무의식에 존재한다.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사회의 강력한 규범만을 드러 낼수 있다.
스스로를 스스로 가둔다. 사회속에 개인은 드러날수 없으므로 왜곡된다.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부모일수록 자식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수가 많다.
자식의 입장에서 용납되어 지지 못할수 있다라는 생각은 자식의 불안을 만들어 낸다.
세상이 개인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느낌은 개인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간다.
불안한 개인들... 그중 마음의 순수하고 약한 사람들은 우울증을 향해 방향을 튼다.
"너는 용납되었다. "
누군가 이렇게 말할때, 온전해 질수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2012년 3월 24일 토요일
공주병 왕자병
정치는 이러이러해야 하고,
사회는 이렇게 돌아 가야하고,
경제는 이렇게 해야한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날 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나의 문제만 남게 된다.
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세상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어 간다.
내가 힘들기 전에는 나의 문제에 대해선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기독교는 교리는 이러해야 하고,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상을 가진다...
그러나 내에게 문제가 생기면 교리가 이러이러해야 한다에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줄수 있는 대상을 구하게 된다. 그 대상은 전지 전능한 대상일수록 나를 구할 가능성은 많아 진다.
대상을 항상 바같에 둔다.
평시에는 세상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나를 구원할 대상을 찾는다.
공주병, 왕자병도 이와 같은 것 같다.
부모님은 나를 위해서 이러이러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부모님에게 의존하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 관계를 만들어 가지 못한다.
대상은 항상 밖에 있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 보지 못한다.
자신을 돌앙 보지 못하면 공주병 왕자병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싶다.
2012년 3월 16일 금요일
있음에서 함으로, 마뚜라나 .. 개떡같은 책이다.
개떡같은 책이다.
'개떡같다'라는 말은 '보잘것 없는 것'라고 일반적으로 의미한다.
개떡이라는 단어를 모른다면 '이책은 개떡같다'라는 의미를 알수 없다.
그러나 '개떡같다' 라는 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책이 보잘것 없다라는 의미로 평가하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일반적인 세계도 이런식으로 인식한다. 지금까지 배워오고 살아온 데로 인식한다.
지금 보여지는 것과 그 인식이 머리속에 형성하는 것을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하게 된다.
마뚜라나와 발렐라가 쓴 앎의 나무에서"사람들은 보통 무엇(예컨데 공간이나 색채)을 그냥 받아들여 지각한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는 개인의 구조가 뚜렷이 새겨져 있다.
..... 평소 매우 단단하고 확실해 보이던 것이 얼마나 빨리 허물어져버릴 수 있는지 생생히 기억할것이기 때문이다. "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실 '앎의 나무', '있음에서 함으로' 라는 책이 보잘것없는 책이아니라 엄청난 책이다.
누군가 어떤 말을 하면 개인이 가진 사고의 구조속에서 판단한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이 하고자하는 의도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듣는사람의 판단에 의해 말은 판단되어 진다.
문제는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의 판단 구조를 알고 있다면, 말하는 사람은 원하는 의도를 상대로 부터 끌어 낼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의 계절이다. 수없이 많은 정치인들이 수없이 많은 말들을 쏱아 낸다. 쏱아내는 이유는 의도를 포함하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반응하는 조건을 충분히 연구를 했고, 반응을 끌어 낼것이다.
이책은 보이는데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것을 이야기한다.
"이책은 개떡같다" 이러한 말에 혹해서 이책을 읽지 않으면 엄청나게 중요한것을 놓치게 될것 같다.
정치의 계절..... 정치인이 하는 이상한 말에 나도 혹하지 말야 겠다.
삶이 무엇인가? 묻는 다면 당황스럽다.
삶이 무엇인지 정의 하긴 어렵다.
그러나 삶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한다고 삶을 모르는 것일까.
누구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삶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그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른다고 손을 못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삶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삶을 못사는 것은 아니다.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 설명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손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우리 의도대로 손을 움직인다.
내가 삶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도,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삶을 살아 간다.
삶이 무엇인가? 누구나 다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앎을 따라 살아 가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묻기 전에는 알수 없다.
2012년 3월 4일 일요일
매너나 하면서 대충 대충 살아가고 있구나
앞사람과 부딛혔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분은 그래도 화를 냈다.
그분의 화에 나도 화가 났다.
미안하다고 했을때
용서는 그사람이 하는 권리라는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잘못을 했을때
내가 내스스로를 용서를 했고,
내가 스스로 용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했었다.
나는 매너를 했고, 그분도 매너를 하기를 바랬는데 그게 아니어서 화가 올라온것 같다.
'나'라는 존재가 '매너나 하면서 대충 대충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그런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