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들어 귀가 멍하다.
귀가 멍한것 빼고는 다른곳은 아픈곳이 없는데.. 그다지 몸은 편하지 못하다.
몸이란 서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한곳이 아프면, 다른 곳들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고 전체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만약 일정 부분에 감각이 없다면, 그 감각이 없는 부분에 상처가 난다 하더라도 다른 부분에는 여향을 미치지는 못할것이다. 이경우 몸은 편안할 수 있지만, 실재 몸의 상태는 정상이 아닌것이라고 할수 있다.
가족이 있다. 가족내에 구성원이 있다. 그 아이들은 대부분은 공부도 잘하고 착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그중 한 아이는 매일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고, 집을 나가서 살고 있다.
그 가족은 행복할까. 그 한 아이때문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언제나 걱정한가지를 가지고 살아 가리라고 여겨 진다.
그 아버지는 아침에 나가서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을 한다. 경쟁에 이기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간다. 그아버지는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일까.
그 아버지가 놈팽이 아들을 외면한다면(이미 집에서 나갔으므로) 나름 걱정없이 살아 갈수 있으라 여겨지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운명적으로... 그렇게 왜면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그 아들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 몸의 일정 부분의 감각이 마비되어서 그 일정 부분이 아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부분이 편안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은 것 같다.
그러나 몸의 일정부분이 마비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것이므로 통증이 오더라도 그 마비된 부분을 먼저 풀어야 한다.
아버지가 놈팽이 아들을 외면해서는 단기적으로는 편안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다른 부분들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건강한 가정이라면, 그부분을 외면할수 없기 때문에 놈팽이 아들이 건강한 정신이 되도록 모두 열심히 노력을 할것이다.
내 다리가 편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부분이 편해야 편해 지듯이, 내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서도 가족 구성원들이 편해야 나도 편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내몸이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가정도 그 구성원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연결이 되어 있다.
이것을 사회로 확장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벼랑끝에서 힘들게 메달려 있고, 어떤 사람들은 모든것이 풍족하게 살아 가고있다. 사회에서 학교에서 언제나 경쟁력을 외치고 있다.
경쟁에서 패하면 벼랑끝으로 몰리게 된다. 승자가 모든것을 가지는 구조이다.
내 몸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가정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사회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고 여겨진다. 많이 사람들이 벼랑끝으로 몰리는 상황들이 나와는 상관없이 라고 느껴질수도 있을것 같다.
그러나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의 일정부분이 마비되어 가고 있는것은 아닌지 모를일이다. 어딘가 마비된 사회...
놈팽이 아들이 있다. 그 부모는 그아들이 바른길로 가게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번다.
부모는 힘들지만 그 아들이 바른 사람이 된다면, 그 힘듬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것이다.
누군가는 사회의 경쟁에서 져서 벼랑끝으로 밀려간다.
그 누군가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이고, 형제일것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승자이든 패자든 자식이다.
사회는 국격을 따지고, 세계1위가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한다.
국격이 높고 , 세계1위가 되었는데, 자식중 누군가는, 부모중 누군가는, 형제중 누군가는 벼랑끝으로 밀려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면 우리의 삶에서 국격과 세계1위가 중요한 것일까.
모든 사람이 다 풍족하게 살수는 없지만, 서로 아타까워하며, 눈물을 닦아주면서 느리지만 천천히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는것이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자식은 부모를 무시하고, 부모는 자식에 관심이 없는 가족.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증오하는 사회.
이경우 연결이 끊어져 있다 라고 할수 있을것 같다.
삶의 의미란 끊어진 연결을 붙여가는 과정이라고 할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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