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4일 월요일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우리는 폐족이다. 시련의 대처

다산 정약용은 귀양을 간다.

폐족은 절망이다. 어찌보면 아무것도 할수 없다.
그러나 절망은 내가 절망할때 절망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절망이라고 해도 내가 절망하지 않으면 절망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시련이다. 정약용은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제 폐족이 되어 살아가야 하는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폐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의 편지글중 일부는 적어보았다.

"청족(깨끗하고 이름있는 선비집안)으로 있을때는 비록 글을 잘하지 못해도 혼인도 할수 있고 군역도 면할수 있지만 폐족으로서 글까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글 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할수 있을지 몰라도 배우지 않고 예절을 모른다면 새나 짐승과 하등 다를 바 있겠느냐?
폐족 가운데서 왕왕 기재가 많은데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고 과거 공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에 응할수 없게 됐다고 해서 스스로 꺼리지 말고 경전 읽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여 글 읽는 사람의 종자까지 따라서 끊기게 되는 일은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

"이 늙은 아비가 세상살이를 오래 경험하였고 또 어렵고 험난한 일을 고루 겪어보아서 사람들의 심리를 두루 알게 되었는데, 무릇 천륜(天倫 )에 야박한 사람은 가까이 해서는 안되고 믿을수도 없다.
비록 충성스럽고 인정 있고 부지런하고 민첩하여 온정성을 다하여 나를 섬겨 주더라도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은혜를 배반하고 의를 잊어먹고 하루 아침에는 따뜻이 대해 주다가도 저녁에는 차갑게 대해주고 만다.
대개 온 세상에서 깊은 은혜와 두터운 의리는 부모 형제보다 더 두터운 것이 없는데 그들이 부모형제를 그처럼 가볍게 버리는데 벗들에게 어떠하리라는 것은 쉽게 알수 있는 이치다.
너희는 이점을 반드시 기억해 두도록 하라."

" 무릇 부하고 귀한 권세 있는 집안은 눈썹을 태울 정도의 급박한 재난을 당하여도 느긋하게 걱정없이 지내지만, 재난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먼 시골 깊은 산속으로 몰락하여 버림받는 집안이야 겉으로는 태평이 넘쳐흐르는 듯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근심을 못 떨치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그늘진 벼랑 깊숙한 골짜기에는 햇볕을 볼 수 없고, 함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은 모두 버림받은 쓸모없는 사람으로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찬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견문이란 실속없고 비루한 이야기뿐이다.
진정으로 바라노니, 너희들은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하여 벼슬길에 있는 사람과 다르게 생활해서는 안된다. ...
천리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진 사람이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하루 아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가 버린다면 무식하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끝마치고 말 뿐이다."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박석무 편역 -

2012년 6월 1일 금요일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억력이 나빠진다. 당연한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억력이 나빠진다. 당연한것 같다.

기억을 한다는 것을 무엇을 입력하고 처리하고 출력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앞에 모니터를 모니터라고 안다고 하는 것은 모니터를 본적이 있고, 그 이름이 모니터란 것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앞에 사물을 보고 처음 봤으면 무엇인지 모른다.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모니터를 보여 주면 뭔지 모른다. 보고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억력이 나빠졌다라는 것은 기억을 잃은 것은 아니다.
기억을 출력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기억이 지워졌다면, 다음에 생각이 안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안나지만 다음에 생각이 난다라는 것은 뇌어디인가 기억이 존재하지만 지금이순가 그 기억을 출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억력이 나빠졌라고 했을때, 기억의 과정중에서 출력하는 기능이 저하되었다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볼수 있다.

국민학교 친구 이름은 말해보라고 하면 몇명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민학교 친구를 만나서 그 친구가 구체적인 상황을 말해주면 생각나지 않던 친구들의 이름이 생각난다.
기억이 지워진것이 아니라, 뇌의 어딘가에 기억이 있는데, 내 의식이 그 기억을 출력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에너지의 소비의 관점에서 보자. (개인적 생각)
기억을 입력할때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느냐에 따라서 입력이 잘된다.
공부를 할때 반복해서 읽고 쓰면 반복한 수만큼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입력을 많이 시킬수 있다.
그리나 공부를 하면서 잡생각을 하게되면 에너지는 잡생각과 공부하는 부분이 나누어 지기 때문에 집중해서 하는것 보다 에너지 효율이 낮아 지게 된다. (사람의 선천적인 능력에 따라서 기억력이 좋기도 하다)
투입에너지는 시간에 비례하지만, 몰입을 증가시키면 짧은 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투입할수도 있다. 몰입도가 높으면 짧은 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게 된다.
몰입해서 몇시간 공부하고 나면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배가 고픈것은 그만큼 공부에 에너지를 많이 사용했다는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몇시간을 잤다고 배가 고파지지는 않는다.

기억이란 것을 입력을 시켰는데 필요할때 출력을 못하게 되면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공부를 밤을 세워 했는데, 다음날 아침 정신이 멍해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시험을 망치게 되고, 시험이 끝나고 낮잠을 자고 나니 생각이 나는 수가 있다.
이는 입력도 중요하지만 출력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출력에도 에너지가 소모된다. 최적의 커디션일때 시험을 잘볼수 있다. 즉 시험에 몰입해서 그 문제에 에너지를 사용할수 있을때 출력이 제대로 된다.
어떤 걱정거리 혹은 잠을 못자서 혹은 감기가 걸려있을 경우, 우리의 뇌는 다른 걱정거리나 병의 면역시스템에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충분이 시험문제에 에너지를 소비할수 없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것(걱정거리를 가진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처리하기 위해서 우리의 몸의 많은 에너지가 스트레스를 처리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진다. 우리몸의 각부분에 적정한 에너지의 분배가 깨어짐으로 기억을 저장하거나 출력하는 부분의 에너지가 부족해질수도 있을것 같다.
따라서 스트레스는 기억력의 감소에 영향을 끼칠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어 질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병에 잘걸리는 것도 우리몸의 면역기능에 사용되어야 할 에너지가 스트레스 처리에 사용되기 때문에 면역기능이 떨어져서 병에 잘걸린다.

스트레스는  에너지사용의 불균형을 초래해서 기억력의 감퇴를 비롯해서 면역기능이나 대사 기능의 혼란을  초래할수 있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