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0일 목요일

쇼팽 발라드

설전날 아무도 오지 않는 가계에서 호로비츠가 연주하는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유튜브를 통해서 듣고 있다.
집사람이 가끔 연주하는 곡이다.

마음을 격동시키는 것같다.

지금은 쇼팽의 발라드를 듣고 있다.

쇼팽의 발라드가 조금더 듣기 편하다.

'음' 하나 하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게 연결되니까. 내마음이 움직인다.
모든것은 연결되어 존재하는데, 나만 잘난지 알고 살고 있는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2014년 1월 25일 토요일

새싹씨앗의 종류, 30여종 이상..

새싹하면 무순계열이 생각난다.
그런데 생각보다 종류가 많이 있다.


새싹으로 나오는 것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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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겨자, 경수채, 근대, 다채(비타민채) 콜라비, 메밀, 밀, 배추, 보리, 브로콜리
비트, 무순, 상추, 무, 알팔파, 양배추, 로메인상추, 완두, 유채, 적근대, 적무,
적양배추, 청경채, 치커리, 케일, 크레스(물냉이), 클로버, 해바라기, 홍염무,
홍화, 조, 찰수수, 기장,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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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여종이상 되는것 같다.

이중에서 새싹브로콜리와 새싹겨자가 맛이 좋은것 같다.
클로버를 먹는다는게 신기하지만 생각보다 연하고 고소하다고 한다.(아직 먹어보지는 못했다.)

산마늘 / 명이 맹이 멩이


가끔 고기를 먹으로 갈비집에 가면 명이나물이 나온다.
명이나물에 고기를 싸서 먹으면 맛의 궁합이 잘 맞다.

산마늘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명이 혹은 맹이 라고 불리기도 한다.

바보란 바다의 보배

조금이라도 손해를 본다는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하나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한다.
그러한 삶이 바른 삶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손해인지 알면서도 손해를 본다.
어떤것이 불편한지 알면서 불편을 감수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바보라고 한다.

우리는 조금만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한다.
조금만 손해를 보는 것도 하지 않으려한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만 손해를 보는 것이 무능력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바보라는 말속에 시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련 넘어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미지의 것이다.

그런데
바보라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손해도 보지 않고 불편할 필요도 없이 살고 있다.

바보란 '바다의 보배'이다.

시련 넘이 있는 미지의 것속에 구원이 있는 것 같다.

2014년 1월 24일 금요일

아스파라거스 씨앗

예전에 일본에 가서 튀김 전문점에 갔었다.
3000엔 짜리인가 튀김 요를 시키니까. 아스파가거스 튀김이 나왔었다.
그때는 이게 뭐지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비싼 식재료 중에 하나인것 같다.

얼마전에 아프리카에서 살고 계신분이 가계에 왔었는데, 그곳에서도 아스파라거스는 비싸다고 한것 같다.

아스파라거스는 2년동안 키워서 3년째 부터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10년 이상 수확이 가능하다고 하니 잘만 하면 적금을 드는 것과 비슷하다.
잘만 키울수 있다면 귀농작물로도 괜잖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달려 들어도 2년은 기다려야 수확을 할수 있다.



다른 씨앗과 비교해서 가격이 조금 비싸다.
그런데 씨앗으로 재배하려고 하면 씨앗가격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수 있다.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아스파라거스가 유행할지도 모르겠다.




마음챙김과 심리치료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마음대로 조종할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다. 
의식적으로 하나의 생각에 머무르려고 하면 아주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통제할수 없는 생각이 분노나 불안과 연결되면 마음은 편안하지 못하게 된다.

본인이 통제할 수없는 불안과 분노와 연계된 생각들이 자신을 지배하고, 그에 대한 증상으로 잠을 못자거나, 몸이 아프거나 밖을 나가지 못하거나, 분노를 통제할수 없을때 그러한 것을 마음의 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은 모든것을 만들어낼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상상할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것을 만들어 낼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최악을 마음에서 만들어 내기도한다. 
그런데 그 마음은 본인만이 볼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을 모르고,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마음챙김과 심리치료라는 책이 있다. 부재가 불교명상과 심리학의 만남이다. 


여러명의 저자들이 각자의 전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1부 마음챙김의 의미
2부 치료관계
3부 임상적 적용
4부 과거와 전망

이러한 순서로 나온다. 

불교적 관점이 심리학과 만난다. 과학적이라는 말과 먼것 같은 불교적 관점이 과학적 증명을 통해서 강화되어 지고 있는것 같다. 

서양의 많은 지식인들이 불교적 세계관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과학이 물리지적 세계를 지배해 가고 있는데 반해, 갈수록 마음은 황폐해지고 있기 때문인것 같다. 

마음챙김이라고 말하면 비과학적인것 같다. 
그러나 마음챙김과정을 의학장비로 그 효과를 증명해내고 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미지의 것일때 생각하는 것 보다 더 과학적일수 있다. 

과학적이라는 한계에 빠져버리면, '미지의 것'을 '미개의 것'으로 여기는 우를 범할수도 있다. 

"마음챙김은 두려움이 생길때, 그 두려움에 점차적으로 환자의 주의를 돌리기 위한 기법이며, 친근한 수용의 정도를 증진시키면서 그 두려움을 세밀하게 탐색한다." 책의 한부분이다. 

마음챙김이 인지치료와 결합하고 있다. 그 분야를 MBCT (마음챙김에 기초한 인지치료)하고 한다. 

마음챙김이라는 비과학적일 것 같은 분야가 과학적지지 자료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는 미지의 것에 마음을 열어야 할것 같다.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베이비 메밀 씨앗

베이비 메밀씨앗

베란다에서 간단히 길러먹을수 있는 씨앗으로 베이비(어린잎)채소가 있다. 

일반채소와 새싹채소의 중간이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인기가 없는것 같다. 

그래도 집에서 간단히 길러 먹기는 좋다. 

칼로저스의 카운슬링의 이론과 실제


책이 교재처럼 생겼다. 아마 교로로 나온 책인것 같다.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실제 상담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꼭필요한 책인것 같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라고 여긴다. 
그 앎을 바탕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판단을 기준으로 상대를 개조하려고 한다. 

칼로저스는 "어떤 사람이 친구나 친척에게 상담자로서 행동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경우, 그것은 거의 대부분 상대방을 '개조'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그 자체로 실질적인 상담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 

'공감' 같이 느끼는것이다. 판단은 이성의 영역에 가깝다. 그러나 공감이라는 것은 감정의 영역이다. 이성적 판단으로 다가서면 같이 느낄수 없다. 
같이 느낄수 없으므로 상대에게 다가설수없다. 

같이 느끼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들어 보아야 한다. 내담자 중심상담의 특징은 이야기를 듣는것이다. 그런데 그냥 듣기만 하면 시간만 낭비하는 것일수 있다. 그냥 듣는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자신의 진짜 문제를 이야기 하면서 그것을 깨달을수 있도록 하는 이야기 듣기이다. 이야기 하는 과정속에서 스스로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고, 상대와 공감하는 것이다. 

듣는다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들으면서 문제의 핵심을 끌어 내야 하고, 내담자가 스스로 문제를 느껴도록  해야한다. 배우는 사람이 깨달아서 공부해가는 분야인것 같다. 

인지치료쪽을 보면 일정한 매뉴얼 같은 것이 있다. 그런데 이쪽은 그걸 스스로 체득해야 한다. 이쪽에서는 인생경험이 이론보다 중요할수 있다. 


"하지 않음으로써 하게 한다." 이게 약간 동양적이긴 한데, 칼로저스도 동양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블랙커런트 씨앗

블랙커런트 씨앗이다.
아주 작다. 상추씨앗보다 작은것 같다. 


1m 정도 자란다고 하고, 열매는 즙이 많고 신맛이 강하다고 한다. 
씨앗만으로는 다 자라났을때의 크기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보이는것만이 전부는 아닌것 같다. 


2014년 1월 22일 수요일

실존주의 심리치료 / 시련이 공부인 분야이다.

실존주의 하면 철학적이다.
하이데거가 생각나고, 샤르트르가 생각난다.

이책을 보고 Irvin D Yalom의 책들을 찾아 봤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그분이 하는 집단상담동영상도 봤다.

실존주의 하면 어렵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을 보다 몇번 잠들었는지 모르고, 아직도 앞에 몇페이지를 본게 전부다.



이책은 하이데거의 책만큼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이책을 공부하려면 조금 시간을 내어서 집중을 해야 할것 같다.
간단히 읽을 책은 아닌것 같다.

좀더 시간이 있으면 파고 들러 가야한다. (교재로 쓰여진것 같기도 하다)
신프로이트의 정신역동에서 '호나이'나 '프롬'이 나오면 그와 관련되것을 공부해야 하고, 키에르 케고르의 책들도 읽어 보아야 한다.
메다드보스, 빅터프랭클, 칼로저스, 메이 등의책들도 찾아 가면서 읽어야 할것 같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거치면 이 책에 대한 나름대로의 관점이 정립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다.

일반 정신역동교재와 비교하면 이책은 상당히 철학적이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기교만 남는다.
기교는 '어떻게 보이도록 만들뿐이지'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이쪽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은 많은 시련을 경험해야 하는것은 아닌가.
내가 어떤 고통을 모르면, 어떻게 그 고통을 가진 상대방을 공감할수 있을 것인가.

시련이 공부인 분야이다.

커피씨앗

커피씨앗 두개를 사진으로 찍었다.


아라비카커피인지, 콜롬비아 커피인지, 에티오피아 커피인지 알길이없다.

단지 커피씨앗이고, 자라면 커피나무가 될것이고, 운이 좋으면 커피까지 수확할수 있다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뿐이다.

그런데 이미 커피씨앗을 발아 시켜서 나무로 키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진을 보면서 그 사람의 머릿속에는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려질것이다.

그냥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인데, 잘 자라면 귀중한 것이 된다.

내가 가진 것들중 귀중한지 모르고 쓰레기처럼 버린것들은 없을까.

커피한잔을 해야 겠다.

2014년 1월 21일 화요일

우울증의 인지치료

"우울하다"라고 했을때 우리는 슬프다 이런 느낌을 받는다.
우울증이라는 말은 서양에서 왔다.

'Depression'이라는 증상을 우울증으로 번역했다.
아래로 눌리워진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우울함은 슬퍼서가 아니라, 뭔가 억압된것이 표출되지 못해서 우울하게 드러 난것을 우울증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우울해" 라고 하는 말과는 다른 느낌이다.

우울증의 상담치료에서 어떤 기법을 사용하든 기본은 대화이다.
치료자와 환자와의 소통이다.
어떻게 소통하느냐는 기법이다.

만약 우울증의 우울이 슬픔이라면 치료는 위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억압되어 있다면 위로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억압된것을 드러낼수 있도록 도와 주는 거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것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낼수 없다.
일단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만약 억압된것이 사회적 터부일때 드러 낸다는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 된다.

치료는 대화가 기본이다.
대화가 되기위해서 "라포를 형성하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게 말할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우울증의 인지치료라는 책을 샀었다.
이책을 달달 외운다고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닌것 같다.
달달외우고 다른 사람에게 "나는 전문가다" 이렇게 말할수 있다.
그리고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이책을 본다고 우울증이 낮는것은 아니다.
왜냐 억압된것이 드러 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인데, 책에다 억압을 드러 낼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책은 좋은책이다.
그러나 내가 공부하고 있는 방향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한번 읽어 본것이 전부이다
여기서도 중요한것은 사람에 대한 이해이다.
어느 기법이든 근본은 같은것 같다.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공부하다 보면 사람을 이해하는것은 접어두고,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기법을 공부하는 경향이있다.
그래야 뿌듯하다.  그냥 뿌듯할 뿐일수도 있다.


2014년 1월 20일 월요일

월동시금치씨앗



월동시금치 씨앗


시금치가 맜있다. 시금치 씨앗이 이렇게 생겼는지 처음보는 사람이 많을것 같다. 
저 씨앗속에 우리가 먹는 시금치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도정신치료 입문 ; 핵심감정이란

이책을 사서 여러번 읽은것 같다.
읽고 있으면 알것 같고, 그렇구나 이런 느낌이 든다.
한번 읽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으면 다른 느낌든다.
알것 같다는 느낌, 그게 함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 뒷표지에 "도정신치료의 정수는 치료자의 인격으로써 동토에서 떨고 있는 환자에게 봄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라고 나온다.
아주 간단하다..
누군가 "도정신치료가 무엇인지 아는 것인가" 묻는다면 위의 내용을 그대로 말할수 있다.
그러면 그것이 아는것인가.
안다고 했는데 동토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봄을 가져다 줄수 없으면 그것이 아는것인가?

처음에 읽을때 안다는 것을 문장을 이해하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인격을 수양하기 위해서 평생을 바쳐도, 이책에서 요구하는 인격의 수준에 맞출수 있을지는 어렵다.
나도 서양식의 교육에 익숙해져서, 앎과 실천을 분리해서 보았다.
그런데 이동식 선생님이 이야기 하는 것은 앎과 실철은 분리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말하시는것 같다.

장자에 수레바퀴를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핵심은 전달해줄수 없다고 한다. 결국 핵심은 스스로 깨닫는것이라고 한다.
이책을 아무리 달달 외운다고 해도, 아무것도 배운것이 없을수도 있을것 같다.
"환자에게 봄을 가져다 준다." 에서 봄을 자비심이라고 한다.
자비심을 네이버에 검색하면
" [명사]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남보다 낮추어 보거나 못하다고 여기는 마음. "으로 나온다.
자비심이 무엇인지 안다고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이 달라지는가? 아무것도 달라 지지 않는다. 배우는 사람이 자비심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자비심을 기르기 위해서 몇년이 걸릴까. 평생이 걸려도 상대에게 봄을 가져다줄 정도의자비심의 수준이 되지 않을수 있다.

이책은 굉장히 어려운 책이다. 왜냐하면 읽는 사람이 '도를 닦아야한다'고 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읽는 사람이 자신을 수양하지 않으면 이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수도 있다.
단지 자신의 지적 수준의 허영에 만족하는 정도밖에는...
나도 지적 허영에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책을 보면서 (비로 지적허영이라고 하더라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책에서 언급되는 사람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는것이다.

이책은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그런데 빅터프랭클의 책을 보면 기독교적인 색채가 아주 강하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은 불교라는 커다란 문화의 기반속에서 자라 났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마음에 형성된 무의식은 불교적 혹은 무속적이다.
융의 집단무의식이라고 해야하나...

만약 이책에 나오는 "실례"를 칼 로저스가 남김 것처럼 오디오 혹은 비디오 파일로 볼수 있다면, 엄청 도움이 될수 있을것 같다.

이책을 보면서.. 다른 외국의 대가들 메다드보스, 소울, 빅터프랭클, 알랙산더, 호나이 등등의 저작과 비교해도 대등한것 같다.
한국사람에 맞는 걸로 치면 더욱 수준이 높은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같은 아마추어가 무엇을 알겠는가  싶지만...)

2014년 1월 18일 토요일

내 식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누구한테 물어볼까.

"내 식물에게 무슨일이 일어났을까?" 상당히 도움을 주는 책인것 같다.


이책만 통달하고 나면 준 전문가는 될듯 하다.
그런데 단순히 읽는다면 효과는 덜할것 같다.

키우는 식물이 있으며 그 식물을 유심히 보고, 문제가 있다 싶으면 책과 비교해나가면 배움의 깊이와 폭은 많이 넓어질것 같다.

그래도 가장 좋은 방법은 잘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는게 제일 빠를것 같다.




소유냐 존재냐 , 어렵다.

10년도 전에 구매했던 책이다.


한때 에이히 프롬의 책을 거의 다 읽었던것 같다.
그때는 읽으면서 이해했던것 같은데, 지금 그책들을 보면 그때는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해하는 것고 다시 10년이 지나서 읽어서 이해하는 것이 다를것 같다.

책을 보니가. 2001년에 구매했었는데 , 왜 원서를 구매했을까. 지금도 어려운데..

10여년전에는 에히리프롬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한축으로 사회를 변혁을 추구하는 학자로 이해했던것 같다.

그런데 지금 자세히 프롬의 책들을 보면 사람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중심인것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필요한것은 무엇인가.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를 원하고, 풍족하게 쓸수 있는 돈이 필요하고, 누군가 나의 말을 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축약해서 말하면 명예, 돈, 권력으로 축약된다.
무엇을 가짐으로써 행복에 도달할수 있다라고 할수 있다.
현대를 살아 가는 누군가도 여기서 벋어나서 살아가기가 힘들다.
권력을 나쁘다고 말하지만, 누군가 나의 말을 들어 주기를 원하고,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최선을 하다고,
명예가 허위라고 하지만, 나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우리마음에는 정확하게 정의된 명사 '명예' "돈" "권력"이 들어 있는것이 아니라, 그 내용들을 체험으로 들어 가있다.
내가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것 같지만, 그러한 명예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명예를 위한 행동이라고 정확하게 인식하기는 어렵다.

어떤 삶의 존재양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기때문에 당연화 되어 있고, 무의식화 되어 있다.
그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To have or To be / 삶이냐 존재냐로 번역이 되어있다.

우리는 무엇인가 가지고 싶어한다.
그게 안되면 좌절을 느낀다. 좌절은 불안을 만들고, 불안은 분노를 만든다.

더 가지고 싶다. 우리 마음속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마음이 있다.

그런데 아무 많이 가져도 우리마음을 다 체울수 없다.
즉 To have  소유라는 삶의 방식의 궁극적 한계이다.

소요하려고 하지 않는 방식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무소유라는 책이 삶의 변화시키는 책으로 받아 들여졌고, 법정스님을 많은 사람들이 존경했었다.
더불어 존재하는 방식그것을 프롬은 To Be로 표현한다.
가질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

더높은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산이 높던지 말던지, 산을 오르면서 느끼는 즐거움에 취한 사람도 있다.
더높은 산을 올라야지 하면, 낮은 산은 항상 불만이다.
제일 높은 산을 올라 봤자. 뭐가 남겠는가.
삶의 한순간 한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그게 도에 이르는 길이고, 구원의 길이 아닐까..



2014년 1월 17일 금요일

신경에 사로잡힌 뇌, 나는 자동화 되어 있는가.

'신경에 사로잡힌 뇌'


'인식-처리-출력'이러한 순서로 사물을 인지한다.
우리가 무엇을 인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자동화 되어있다.
사과를 보면 순식간에 침이 고이던지, 혹은 아이폰이 생각난다.
뉴런과 뉴런이 연결되어서 하나의 신경경로가 만들어지고, 그 것들이 커다란 신경계를 형성한다.
이책은 자동화된 반응에서 벋어나는 것을 이야기한다.
호흡법, 마음챙김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것 같다.

이것이 동양적 전통 - 명상, 호흡법, 마음챙김- 이 과학과 접목되는 현장인것 같다.
서양적 치료의 한계를 동양적인 것과 접목함으로써 한단계를 도약하고 있다라고 여겨진다.

신경계에 의해서 자동화 되어 반응한다면, 곳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나'라는 존재이다.
'나'는 뇌가 지배하는 영역을 넘어서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겟다.

자동반응화된 신경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면 더 힘들어 질수 있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잠을 자려고 노력하면 더욱 잠이 안온다.
그때는 반대로 생각하는 거다.
'빅터프랭클'은 역설치료하고 했다.
그는 고통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기때문에 더욱 고통스럽다고 한다.

이 치료법보다는 작은 나무 한그루를 정성을 다해 심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해소될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경계는 고통이라는 단어보다는 '어떻게 나무를 살릴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찰 것 같다.

사회원예학의 권장 / 치유의 힘

이성과 과학이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인가 정확하고 논리적인것을 좋아한다.
'사회원예학의 권장' 약간은 철학적이다.

에리히프롬이 서양은 명사를 주로 사용하고, 동양은 동사를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서양은 have로 표시되는 획득 중심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동양은 being 존재하는 상태를 중심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지금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획득, 소유'라는 것이 사고유형의 중심이다.

원예의 특징이 '기른다.'라는 행위이다.
대상은 식물이다.
식물을 기르는 과정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바라본다.
작가는 기른다는 과정에서 획득보다는 기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 기르는 과정이 치유의 역할을 한다고 보는것 같다.

씨앗을 뿌려서 식물을 기른다. 만약 전과정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처음에 단순희 수확물의 획득을 목적으로 했더라도, 과정속에서 느끼는 것은 최종수확물을 사는 소비자와는 다를것이다.

'식물을 기른다'라는 것은 식물이 가지고 있는 성장의 가능성을 최대한 드러낼수록 만들어 주는 고정이다.

사람은 양육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그러다 성인이 되면 스스로를 양육하는 책임을 진다.
사람의 가능성은 최초 부모에 달려 있지만, 스스로에게도 책임이 주어진다.

저자는 농예를 이야기 한다. 농사를 짓는것도 예절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절을 매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와 매너는 다른것이다.
매너는 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예라는 것을 진정성을 넣는 과정이다.

산에 오르는 행위는 고생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속에 보람이 있다면 그 고생은 고생을 넘어서는 어떤것이 된다.
그래서 또 산에 오른다.

"식물을 기르는 행위" 그자체는 피곤하고 시간낭비적일수 있다라고 생각할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보람을 느낄수 있다면 '기르는 행위'는 기르는 대상을 살리뿐만 아니라 기르는 본인도 치유하는 힘을 가진다.

2014년 1월 16일 목요일

씨앗의 종류 : 재배속도에 따라서 새싹채소 베이비채소

우리는 채소를 먹는다. 
채소가 다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그 모양과 빛갈이 나면 따먹는다. 

그런데 새싹이 나기 시작할때 먹을수가 있고, 작은 잎상태에서 먹을 수도 있다. 
새싹 상태에서 먹을수 있도록 나온 씨앗이 새싹씨앗이고, 작은 잎상태에서 먹을수 있도록 나온 씨앗이 베이비(어린잎)채소 씨앗이다. 

새싹씨앗
- 재배기간 1 주일정도
- 필요준비물 : 물+ 씨앗

베이비채소 
- 재배기간 2~3 주일정도
- 필요준비물 : 흙 + 물+ 씨앗 

베이비채소는 흙에 심어서 작은잎상태에서 수확을 한다. 흙에서 재배하지만 성장기간이 짧기 때문에 재배가 쉽다. 

브로콜리를 배란다에서 재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베이비브로콜리를 재배하면 쉽고 간단하다.  그리고 간단하게 유기농 재배가 된다. 




상추의 종류 ; 새싹상추, 새싹 로메인상추

기존의 상추가 흙이 필요하다면 새싹 상추는 흙이 필요없다.

예전에 뱃사람들이 부족한 영양분을 얻기위해서 씨앗을 가지고 나가서 새싹을 만들어 먹었다는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 실물을 흙의 성분을 흡수해서 자라 난다. 
그러나 새싹은 물과 씨앗자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만으로 자란다. 
채소는 자라면서 성분들이 변화해간다. 

세가지 중에서 새싹채소가 영양이 가장 풍부하다고 한다. 



로메인 상추도 새싹으로 나와있다. 

2014년 1월 15일 수요일

상추의 종류 ; 적치마상추, 로메인 상추 적축면상추, 청치마상추 등등...

많은 사람들이 상추를 먹고 있다.
상추는 크게 결구상추, 반결상추, 잎상추, 줄기상추 4가지로 나눈다고한다. 

우리가 주로 먹는 상추는 잎상추이다. 
그잎상추의 대표적인 것이 적축면상추, 적치마상추, 청축면상추, 청치마상추 등이있다. 


일반적을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상추가 적치마 적축면 상추라고 한다.
사진에서 보면 치마상추와 축면상추의 특징을 볼수 있다.

그다음 많이 재배되는 상추가 청치마 상추이다.


그리고 다른 많은 잎상추들이 있다.


반결구 상추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로메인 상추이다. 로메인 상추를 코스상추라 하기도 하는데 터키의 코스라는 섬에서 유래했다고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우리는 상추를 연중으로 먹을수 있다. 
상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하한다고 한다. 그래서 여름에는 재배가 조금 어렵다. 
여름에 주로 재배되는 상추는 청치마상추이다.  

예전에 상추를 씨앗을 심었는데 발아가 하나도 되지 않았다. 
계절은 가을이었다. 
문제는 여름을 지나면서 씨앗이 높은 온도에서 보관되었던것 같다. 
그래서 씨앗을 냉동실 냉장실에 넣고 하루를 보내고 심어보았다.둘다 발아가 되었다. 
씨앗들이 잠들어 있었던것 같다. 

집에서 키우는 상추는 유기농 상추다. 
마트에가면 유기농상추는 비싸다. 스스로 재배해서 먹으면 그게 건강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기른다는 것은 정성을 요한다. 
'내가 먹을 만큼 길렀다' 라는 것속에 '나의 정성이 들어 가있다' 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정성만큼 몸과 마음은 건강해진다. 

흙을 만지고, 푸른것을 본다라는 것.. 그속에서 자연을 느낄수 있다. 

우리는 하루 하루 달라진다. 그러나 그 변화를 느끼기 힘들다. 우리의 변화는 느리다.
'씨앗을 뿌려서 기른다' 라는 과정에서 생명의 변화를 느낄수 있다. 상추의변화는 우리가 느낄만큼 빠르다.
어느날 눈을 뜨니 '벚꽃이 피었다'와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우리의 모든것을 주지 못한다. 
주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은 언제나 외롭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찾는다. 

씨앗이 원하는 모든것을 주면, 씨앗은 먹기리로 나에게 보답한다. 
단지 몸이 필요로 하는 먹거리 뿐만 아니라 내가 준만큼의 보람이라고 하는 것이 찾아온다. 

나는 씨앗을 살리고, 씨앗은 나를 살린다. 

2014년 1월 14일 화요일

게릴라 가드닝 / 아름다움을 공유하자.

게릴라 가드닝 - 강렬한 제목이다.
빈공간에 꽃을 심자. 게릴라 전을 하듯이..



꽃을 심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회운동을 이야기 하는것 같다.

그런데 동양의 전통에서는 꽃을 심고 가꾸는 행위는 자신의 마음을 다루는 행위와 가깝게 여겨졌다. 자신의 변화에서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책은 서양적인 시각이 강한것 같다. (서양사람이 쓴책이므로 당연하지만..)

그러나 우리주위에는 이미 많은 게릴라 가드너들이 있다.
단독주택옥상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텃밭을 만들어 식물을 키우고 있다.
장소가 부족하면 화분을 집앞에 내어 키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텃밭이 놀고 있는 곳은 없는것 같다. 누군가 무엇인가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 가도 팔려 하는 작물재배와는 별도로 집앞 밭이나 공터에 무엇을 키운다.

그러나 이책에서 본받을 만한 것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나의 소유와 관련없어도 씨앗을 뿌리고 가꾼다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다른사람들과 같이 느끼고 싶다' 에서 시작하는 것같다.
그리고 좀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게릴라 가드너들의 노력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반성해보아야 겠다.


2014년 1월 13일 월요일

도시농업, 도시농업이 도시의 미래를 바꾼다. - 미세움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다시 한번더 보려고 한다.


이책을 읽으면 도시농업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들을 얻을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환경과는 조금 다른 측면들도 있다.

도심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도시농업이라고 한다.
베란다, 옥상, 마당, 텃밭등에서 재배활동을 하는 것이다.
먹거리를 재배하는 것에서 꽃을 재배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측면이 있다.

엘빌토플러의 프로슈머(생산자가 소비자라는 개념)라는 개념과 도시농업을 하는 것과 비슷한것 같기도 하다. 엘빈토플러도 앞으로는 스스로 생산해서 스스로 소비하는 사회가 올것이라고 예견한것 같다. (읽은지오래되서 맞는지는 모르겠다)

사회가 점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약해져간다. 사서먹는 먹거리에 대해서도 점점 신뢰도가 낮아 진다. 그래서 스스로 길러 먹는다.

인구 구조측면에서 고령인구가 늘어 간다.
건강한 먹기리에 대한 관심이 점점더 높아지고, 사회는 점점 서로에대한 신뢰는 잃어 간다.
그래서 스스로 재배한다.
그런데 재배라는 과정을 통해서 좋은 먹거리 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가져온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면 풍요로워지면, 좀더 남을 이해할수 있다.
잃어가는 신뢰도 재배한것을 서로 나눠 먹으면서 회복할수 있다.

도시농업이란 것이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도 증진 시킬수 있지 않을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식물의 불가사의한 힘을 찾아서 - 파워북

책한권을 샀다.
제목의 "식물의 불가사의한 힘을 찾아서" 이다.

식물이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다고 하는데 그 불가사의한 힘이 "치유"이다.



'원예치료란 무엇인가'라는 것에서 시작한다.
원예라는 것은 기른는 것이다. 그 대상은 식물이다.
우리는 몸에 좋다 라고 할때 먹는다는 개념이 강하다.
어떤 병에는 어떤 식물이 좋다. 이책에서도 먹는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그것을 다룬다.
그리고 '기른다'라는 행동이 우리의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느냐로 옮겨간다.

한사람이 전체를 이야기 하는것이 아니라, 여러명이 각자의 부분을 이야기한다.

좋은 먹거리가 건강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좋은 환경도 건강에 도움을 준다.

"정원을 손질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어지러운 머리가 말끔해져도 치료를 받았다고는 하지 않는다. 흙을 파고 식물을 심고, 화분을 운반하는 것이 신체의 운동이 되는 것은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것도 치료라고는 하지 않고, 건강법으로 원예를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활병원에서 원예가 기능회복의 목적으로 채택되었을 때는 확실히 치료로써 실시되고 있다고 말한다." -식물의 불가사의한 힘을 찾아서 中-

식물을 기르는 행위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을 준다.
일반적으로 예방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신세를 진다면, 그곳에서 이루어 지는 행위는 치료이다.

우리의 현재 몸과 마음은 완전하지 않다. 문제를 가진다. 그런데 그 문제가 현재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는 원예를 통해서 우리가 알지못하는  몸과 마음의 어떤 문제를 이미 해소 하고 있다고 볼수도 있다.

하루에 일어 나서 하는 행위들속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행위도 하고,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행위도 한다.
우리가 어느쪽에 좀더 시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건강이 달라진다.

매일아침 눈을 떠서 무엇이 나를 살리는 것인지 공곰히 생각해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