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4일 금요일

장자, 빅터프랭클 .. 장주 나비가 되다.

장자를 읽고 있다.
제물론의 마지막 편에 장주가 나비가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깨어 있는 장주도 장주의 세계이고, 꿈속의 나비도 장주의 세계이다.
내가 현실이 꿈인지 의심하게 되더라도, 꿈은 나의 세계이고,
현실속의 '나'라고 하더라도, 세상은 내가 바라 보는 세계이고,
살아 있는한 나를 둘러싼 현실에서 벗어날수 없다.

장자는 현실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현실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같다.
그기쁨은 현실의 보이는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초월한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존재 분석의 맥락에서 자신에게 느껴지는 모든것은 자신의 현실이며, 그 현실을 바라보고, 나의 것으로 받아 들일때, 자신의 고통들을 초월할수 있다고 하는것 같다고 느껴 졌었는데,
현존재분석을 읽을때는 잘 이해 되지 못하던 것이 장자를 읽으므로서 이해 되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이해되어 지는것 같다.

빅터프랭클의 로고테라피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 장자가 말하는 이야기의 테두리 내에 있다는 느낌이든다.

2012년 2월 7일 화요일

삶은 깨어 있으므로 알수 있다.

잠결에 술을 한잔 먹었는데, 그게 100만원 짜리 와인 이었다면 억울할 일일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깨닷지 못하면 그게 100만짜리 이던 1000원 짜리이던 아무 소용이 없다.
깨어 있을때만 그게 무엇인지 알수 있다.

세상이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깨어 있지 못하면 그 일들이 무엇인지 구분할수 없다.

성경을 본다. 지식으로 많은 것을 보았다. 이책도 보고, 저책도 보고...
많이 아는 것으로 성경을 안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성경은 아는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그 구절들을 통해서 무엇을 느끼느냐.
'안다'라는 것은 어떤 것의 정의를 파악하는 것이다.
성경 구절 구절들은 정의할수 없는데, 안다고 할때 개념의 모순에 빠져서 자만으로 들어 간다.

와인의 맛은 지식으로 알수 없다. 말로 전달할수도 없다.
수없이 많은 경험을 통해서 본인이 느낄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맛은 주관적이다. 그러나 결국 보편성을 따라간다.

성경을 읽을때 처음에는 주관적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삶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편성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읽으면서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 주관적인 감정을 부정하게 되면 객관성을 추구 하게 되고, 지식으로 성경을 읽게된다. '나는 성경을 안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성경을 읽으면서 다가오는 개인적인 느낌이 "나의 깨어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자신의 느낌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그 대로 받아들이고, 삶을 바꾸어야 한다.
깨어 있는 위치는 사람마다 다른지만, 더 깊은 곳을 추구 하게 된다. 깊이 깊이 들어 갈수록 중앙을 향하게 되고, 중심은 한곳이므로 보편적이 된다.

80이 되신 초등학교 밖에 안나온 할머니가 영하10도가 넘는 날씨에 새벽기도에 가시는 것은 지식으로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삶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깨어 있지 못하면 100만원 짜리 와인을 먹고, 맛을 알수 없다.
삶은 깨어 있으므로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