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9일 금요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 정치란 관심이다.

밤이 깊어 잠은 오고 정신은 멍하다.
무엇인가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손이 가는 데로 써보기로 하자.
옆으로 눈을 돌리니 미셀푸코의 " 앎의 의지" 라는 책이 보인다. 읽기는 했는것 같은데 책의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뉴스의 일면은 대부분 정치부분이다. 그리고 경제위기일때에는 정치보다 경제기사가 제일 먼저 나온다. 태풍이 왔을때에는 태풍이 일면이고, 올림픽 금매달을 땃을때는 올림픽이 일면이다.
일면의 경우 현재 우리생활에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치는 것이 나온다.
우리가 정치는 불신한다 하고 있더라도 실제 정치가 일반 국민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부분 정치기사가 일면을 장식한다.

과거에는 일반백성에게는 글을 안가르쳤다. 글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중요한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권력이라는 것은 앎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많은 사람이 안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의 권력이 자신들의 권력의 유지를 여렵게 할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항상 정치란 더러운 것,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포장을 한다.
그래야 자신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줄어 들기 때문이다.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아 질수록 권력은 집중된다. 집중된 권력은 속성상 더 큰 권력을 만들려고 한다. 권력은 무한데로 커지지 않는다. 어느순간 썩게된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아 지면, 세상이 혼란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 저기에서 권력들이 충돌하는것 처럼보인다. 곧 권력의 많은 치부들이 드러난다.
정치란 나쁜것, 가까이 가서는 안되는것 이런 논리가 나올때, 그 사회는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시련을 맞이한다.
이순간 정치란 나쁜것, 가까이 해서는 안된는것, 이런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 가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줄어 들고, 권력은 다시 집중이 된다. 그리고 썩는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드러난 치부를 바로 바라보게 되면 그 사회는 혼란스러워 보여도 발전의 동력을 얻게 된다. 바라 본다는것 자체가 치유의 힘을 가진다.
회피한다는 것은 곪는것을 의미한다.

보이는 상처는 치료가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상처는 생명에 지장을 줄수 있다.

정치란 우리의 삶의 규칙을 만드는 과정이다. 어떤 규칙에서 경쟁을 하느냐에 따라서 어떤사람은 유리하고 어떤사람은 불리하다. 규칙을 만들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혼란 스럽다. 혼란스럽더라도 참여해야 한다.
혼란 스러운 과정을 경험하다 보면, 질서가 생겨서 나중에는 혼란스럽지 않은 것이 된다.
규칙에서 소외되는 사람도 줄어 든다. 혼란스럽다라는 것은 질서를 만드는 자연적인 선행요건이다.
혼란스럽다고 그 과정을 없애려고 하면, 질서는 만들어 지지않는다.
혼란스러운 과정을 없애고 만들어진 질서는 강압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혼란을 경험해야 산이 산이 되고 물이 물이 된다.

2011년 9월 1일 목요일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 /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왼쪽에서 두번째 노랑색이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사진 기술이 없어 사진이 엉망이다. )

나는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항상 결과도 동시에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좋지 못하면 어쩔까 하는 생각에 경제법칙을 적용시킨다.
최소투입에 최대효과... 그래서 항상 최선을 다해 살기보다는 요행을 바라면서 살아 가고 있는 지도 모를일이다.

몇일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를 보러 갔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달리는장면을 보았다.
최선을 다했고, 결과가 나왔다(마지막으로 들어 왔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최선을 다해 살아 가는 그를 위한 격려의 박수 였던것 같다.

"당신이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달려 가는 것을 보니, 비록 끝으로 들어 왔더라도,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 결과에 대한 불안감을 무릅쓰고 그렇게 하는것이 참으로 용감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당신처럼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제가 하고 싶을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당신이 용기가 부럽고, 당신을 보면서 저도 용기를 내어야 할것 같습니다. 제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조건에 한탄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감탄의 박수를 보내고, 내 스스로에게도 오늘 이순간 부터 최선을 다하라는 격려의 박수를 스스로를 위해서도 칩니다. "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