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불신지옥.... 사랑은 저주가 아닌데

어떤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할아버지가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아주 신앙심이 깊은 신자였다.
그런데 치매에 걸렸다. 그 할아버지는 그가 교회다녔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고한다.
그가 교회에 다녔다고 하는 사실을 주위에서 확인해주지 않는 이상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가 치매에서 회복 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믿음을 고백할수 없다.
고백하지 않는 믿음이 믿음의 가치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다.
치매에 걸리는 순간 이분은 기독교인이 아닌것인가.
치매에 의한것은 예외로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치매가 의학적을 발견되기 전까지 치매라는 현상을 나타낸 사람을 '믿음이 있다'라고 교회가 인정한적이 있었던가. 예전에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인정한다면 그것은 누가 판단하는 것인가. 무수한 질물이 떠오른다.
그러나 감히 목사님에게 물어 볼수 없다. 도발적이다.
이러한 질물의 해답을 많은 사람은 기다린다.
'불신지옥' 이런말이 들린다. 이게 협박인가. '불신지옥'이라는 말은 많은 질문을 가로 막는다.
제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 이상한 질문을 한다고 말하면, 질문을 할수 없다.
궁금증을 마음속에 쌓아둔체 믿음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물음을 묻고 있고,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생각이 든다.

믿음은 나의 고백이다. 나의 신에 대한 고백이다. 나의 고백이 진실해져야만, 진정한 자신이 신앞에 다가가는 것이다.

많은 질문을 가슴에 쌓아두고, 판단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하고 있다면, 나의 고백은 진실하지 않는 것이 된다.

진실한 고백이 되기 위해선 무엇이든 물어 볼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무엇이든 물어볼수 있는 분위기는 되지 못한다.
자신의 진실한 물음을 감춘체, '이것이 믿음이다'라고 말하는 목사님의 말을 따라서 그렇게 변해 간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물음인가. 목사님의 물음을 내가 대신 하나님에게 묻고 있는 것인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의 믿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 할아버지의 믿음을 확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할아버지에게 누군가 와서 불신지옥을 외친다면, 그말은 폭력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저주가 아닌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할수 있겠는가.
믿음의 본질이 사랑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