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3일 수요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사랑 기독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당연한 말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믿음, 정의, 사랑 당연한 말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나의 문제가 아닐때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정치인 종교인 연예인 등등 항상 믿음 정의 사랑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문제의 상황속에 들어 가면 이 말들은 사라진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나의 문제일때... 위의 말이 통용될까.
나의 문제일때, 믿음 정의 사랑이라는  단어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가 기준이 된다.
어떻게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서 사랑이 문제가 되지 않기도 하고, 정의가 문제가 되지 않기도 하고, 믿음이 문제가 되지 않기도 한다.
멀리 떨어져 있을때는 당연한것들이 당연하게 받아 들이기 어려운것이 된다.

공자는 70에  종심소욕 불유구에 도달했다고 했다.
말로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당연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되기가 어렵다.
모든 상황에서 사랑이 사랑이고. 정의가 정이이고, 믿음이 믿음이기 어렵다.

우리는 이런 말을 쓴다. 사랑하지만, 정의로와야 하지만, 믿지만...
어떤 조건에서는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는것을 이런 말로써 드러낸다.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인 까닭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한 것을 당연한 채로 받아 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말을 쓴다.

목사님 들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이런 말을 한다.
어떤 목사님은 이런 말도 한다. 일본 지진은 하나님의 경고 라고...
이말에서 사랑은 조건이 붙어 있다.
진정한 사랑이란것이 조건이 있는 것일까. 조건이 없는 것일까.
무엇이 완전한 사랑일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사랑이 조건이 있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격하시키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을 느끼도록 조건을 두는 사랑을 하시는 분일까?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기 어렵다.
그러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사랑이 당연하고, 정의가 당연하고 믿음이 당연해야 한다.
당연한것이 당연한 것이 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말로만 당연한 세상에...

2012년 5월 21일 월요일

영화 돈의맛... 야한걸 원한다면...

돈의맛
돈맛을 아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이다.
돈맛 ... 나도 알고 이글을 읽는 분도 알것 이고...
영화는 돈맛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기업 재벌회장... 돈맛때문에  재벌가에 장가 들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돈맛을 느끼는지 잘안다.

재벌회장 부인... 자라오면서 돈맛을 안다.
사람들이 어떻게 돈맛을 느끼는지 잘안다.

아들도 돈맛을 안다.
딸도 돈맛을 알것 같다.

실장(김강우)이 나온다. 돈맛을 모른다.
회장이 돈맛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주저한다.
회장부인이 돈맛을 보여준다.
돈맛을 알아간다.

생각보다 야한 영화는 아니다.

우리가 돈으로 하고 싶은것 (드러나지 않지만. 본능속에는) 섹스가 자리잡고 있다.
영화에서 섹스는 돈맛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돈의 맛  누구나 맛있는지 안다.

영화는 돈맛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돈맛을 느끼기 위해서 지불해야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회장(백윤식) 부인을 잘 만나서 돈맛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돈맛에 지불해온 인생을 생각한다.  자유를 원한다. 그러나 너무 깊숙히 들어와서 빠져나갈수 없다.
그부인은 남편을 포함한 집안의 모든 것을 감시한다. 자기와 접촉하는 사람들은 돈맛을 알게 만든다. 다른 사람에게 돈맛을 제공해 줌으로써 자신에게서 벗어 나지 못하게 한다.  그게 그녀의 돈맛이다.

회장 장인이 나온다. 영화에 실마리다. 돈맛을 자유 자재로 구사한다.
돈맛을 들인 사람들이 그에게 에너지를 공급한다.

영화는 돈맛이 아닌 다른 맛을 찾는 사람이 나오면서... 갈등이 일어나다.
그 가족은 돈맛이 가족을 유지하는 근간이다. 누군가 벗어나려고 하면 가족은 붕괴한다.
가장이 벗어나려 한다. 돈맛이 아닌 로맨틱한 사랑을 찾아 떠나려한다.

가족은 그 구조를 유지하기위해 노력한다. 부인과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야기한다. 무엇을 해도 좋으니까. 이구조에서 벋어나지 말라고...
그러나 백윤식은 그 구조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떠나긴 한다.

더이상 이야기하면 영화를 스포일러가 될것 같고..

돈맛이 달콤한건 애들 빼놓고 다안다. 요새는 애들도 안다... 돈이 있어야 닌텐도DS도 산다.
돈이 있어야 명품도 사고... 돈이 있어야 여행도 간다.
영화는 돈맛은 달콤한 것만 있는 것만은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인생을 값으로 받는 쓴맛도 있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것 같다.

나의일이 아닐때는 도덕적으로 이야기 할수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 나의 일때 이건 이러해야 한다가 아니라... 모든 것을 도덕적으로 풀어내기가 어렵다.

영화를 관객으로 떨어져서... 역시 돈이 행복의 모든 것은 아니야... 이렇게 보면... 별게 없는 영화다..
그러나 내가 김강우의 위치가 되어서 영화의 상황을 바라보면... 영화는 달라 진다.

우리는 '돈이 행복의 모든것이 아니야' 이렇게 알고 있다.(도덕적으로...)
그러나 돈의 유혹이 오면 벋어나기가 어렵다.
사회의 구조가 돈으로 짜여져있다. 돈이 없으면 대접을 못받는다.
돈을 빌리러 친구에게 가면,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있어도 잘안빌려준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로또를 산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돈에 맛들인 나의 문제의식으로 영화를 봐야 영화의 맛을 느낄수 있을것 같다.

마지막 장면 김효진 비행기에서 어떤 아가씨에게 이코나미석에 앉아있는 김강우와 같이 앉기위해서  좌석표를 바꾸어 달라고 한다.
그 아가씨는 그냥 바꾸어 준다.
자리를 바꾸어 나오면서 비행기표를 확인한 그아가씨의 얼굴은 아주 밝은표정이 변한다.
김효진의 비행기 표는 비지니스석이지 않았을까.
그 아가씨가 '관객'이고 '나'이지 않을까. 
돈이란 묘한것이다.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있어야 영화를 볼수있다. 영화를 보는 것은 행복의 한 부분이 될수있다

돈의 맛 오랜만에 본 좋은 영화였다...
야한걸 원한다면..... 실망할듯

유쾌한 때에 관한 김성탄의 33절

오랜만에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을 읽어 보았다.
그중에 유쾌한 때에 관한 김성탄의 33절을 예전에 한번씩 읽었는데..
그때는 유쾌하다고 생각 되던 것들이  지금은 별로 유쾌하다는 생각이 안든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지금 아주 유쾌하겠구나 그건 것이 하나 보인다.
32절 " 빚을 다 갚아버린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안개 속에서 - 헤르만 헷세 -

안개 속에서           - 헤르만 헷세 -

안개속을 거닐면 신기하여라!
숲이며 돌은 모두가 외로움에 잠겨서
나무마다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혼자 있구나.

나의 인생이 아직 밝았을 때는
이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 차 있었건만
이젠 안개가 내리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구나.

어쩔수 없이 모든 것에서 조용히
사람을 떼어 놓는 그 어두움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하지 못하도다.

안개속을 거닐면 신기하여라!
인생은 고독한 것.
사람들은 서로를 모르고 산다.
모두가 혼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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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다닐때 헤르만헷세에 빠져 그의 소설을 거의 다 읽었었다.
단한가지 유리알유희만은 이해가 어려워서 다 잃지 못했었다.
소설을 읽는 것이 사치로 느껴져서 요즈음은 통 소설책을 읽지않는다.

세상은 모든 현상은 혼자 느끼는 것이다. 느끼는 사람이 말하기 전에는 본인 말고는 아무도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각자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자신이 느끼는 데로 반응하며 살아간다.
문화에 따라서 비슷하게 반응을 하지만, 기쁨과 고통과 즐거움과 분노는 자신의 몫이다.


'이세상에 친구들로 가득 차 있었건만..
이젠 안개가 내리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 구나'

안개가 내리면 친구들도 사라지지만, 나도 누군가의 친구들중의 하나이다.
친구들이 사라 졌다고 원망할수 없다. 나도 그들 옆에 있을수 없기 때문이다.
안개가 내리면 각자 혼자될수 밖에 없다.

혼자라는 것은 두려운것이다. 그래서 피하려고 한다.
'그 어두움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하지 못하도다.'
어느순간 (안개가 내리면) 혼자 일수 밖에 없는데...




2012년 5월 15일 화요일

변하다..

변하기 위해서 먼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늦잠을 자는 것을 포기해야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 노는 것을 포기해야한다.

포기하지 않고, 변하려고 하니, 변하지 못하는 것같다.

2012년 5월 14일 월요일

하나님 존재의 증명

초등학생이 있다. 초등학생에게 사람이 어떻게 걷는지 설명해보라고 질문을 하면 설명하지 못한다. 걷는 메커니즘은 나도 설명하지 못한다.
과학자가 있가. 걷는 매커니즘에대해서 확실히 알고 있고, 설명할수 있다. 그리고 그 매커니즘으로 걸을수 있는 로봇도 만들었다.
그러나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한번도 걸어본적은 없다.
설명을 못하지만 걸을수 있는 사람과 설명을 할수 있지만 걷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걷는 사람은 태어나서 몇년 동안 시행착오를 통해서 걷는 방법을 배운사람이고, 그러나 그 매커니즘에 대해서는 설명할수 없다.
걷는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는 몇년동안 연구를 해서 걷는 매커니즘을 알고 설명을 할수 있다.

걸을수 있는 초등학생과 설명할수 있는 과학자중에 누가 걷는 것을 안다고 해야 할까.

수천년동안 신을 믿어 왔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 지금도 믿고 있다.
그러나 신을 누구도 완벽히 설명할수는 없다.
설명할수 없기 때문에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에는 설명할수 없는 많은 현상들이 발생한다.
설명할수 없기 때문에 거짓,허구, 지어낸것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학책에서는 우리은하계의 그림이 나온다. 아무도 우리 은하의 전체를 보지 못했다.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우리 은하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책에 나오는 우리은하계는 상상화다. 우리은하계의 그림을 보고 허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과학책에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설명할수 없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기도 하고, 설명할수 없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믿기도 한다.

많은 믿음들이 권위에 의존한다. 종교가 권위가 있을때는 종교가 말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과학이 권위가 있을때는 과학이 말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는 걷는 것을 설명해낼수는 없지만, 걷는 방법을 안다. 설명할수 없다고 모른다고 할수는 없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할수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여기에(Here and Now)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5월 11일 금요일

장자 제물론 8장 / 내담자 중심 상담

"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말에는 말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만약 말해지는 바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면, 말은 실제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은 말이 갓난새의 삐약거리는 소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차이가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도가 무엇에 의존하기에 참과 거짓이 생겼나? 말이 무엇에 의지하기에 옮고 그름이 생겼나? 어떻게 도가 사라져서 존재하지 않을수가 있는가? 어떻게 말이 존재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을수 있는가? 도가 작은 성취에 의지하고 말이 헛된 겉치레에 의지할때, 유가가 말하는 옳고 그름과 묵가가 말하는 옮고 그름이 있게 된다. 한쪽에서 옳다고 하는 것을 다른 쪽에서는 그르다고 하고, 한쪽에서 그르다고 하는것을 다른 쪽에서는 옳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르다고 하는 것을 옳다하고, 그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그르다고 하고 싶다면, 그때 이용할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밝음이다. " 로버트 엘린슨의 장자 영혼변화를 위한 철학

서구 학자의 제물론 8장의 해석이다. 동양적인 해석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는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해석은 우리틀속에서 장자를 보는것이고, 그의 해석은 그의 틀속에서 장자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말을 들을때 내생각을 기준으로 판단을 한다. 그래서 이말은 맞고 저말은 그르다라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사고를 하는 사람은 같은 편처럼 느껴지고, 나와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정치현상을 보았을때, 극단적으로 느껴진다. 화해 불가능 하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내가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들을때 어떤 말들은 귀에 거슬리고, 어떤 말들은 분노를 만들어 낸다.

칼로저스이 내담자 중심 분석에서는 듣는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듣되 나를 비운체 듣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듣는 사람은 자신을 비울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의 말에 분노 느끼고, 연민도 느끼고, 불안도 느끼게 되므로, 상대방에 말에 빠져 들어가든지,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 지시적이 된다.

위의 장자 구절에서 밝음(明)을 통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 메다드 보스의 현존재 분석에서도 내담자가 가진 모든 것이 드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드러남은 밝음에서 드러난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판단하고 있다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약자라면, 듣는 사람의 판단 기준에 따르려고 노력할것이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자신을 완전히 드러낼수 없다.
최악의 경우 듣는사람이 원하는 말만을 할수도 있다.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말에는 말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아무리 어떤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도 그 이상한 소리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있는것이다. 아기는 아플때 어떤 의사표시를 한다. 그러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알아 듣기 힘들다. 그러나 아기는 이야기 하고 있다. 엄마는 그이야기를 알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아기의 관점에서 듣는다.

어떤 마음이 힘든사람들은 때로는 이상한 소리를 할때가 있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의 혹은 그녀의 관점에서는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말이 안되는 말을 하느냐고 한다.
그래서 그사람은 고립된다. 듣는 사람의 틀에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자신의 감정과 외부와의 차이는 커지게 된다.

완전한 밝음 속에서는 모든것들이 실존하는 것이 보인다.

듣는 사람이 밝음을 기준으로 판단 할수 있으면, 말하는 사람이 편해지고, 말하는 사람이 밝음을 기준으로 이야기 하면 듣는 사람이 편해진다.

'밝다'  라는 것을 알기도 어려운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도 나이 60에 이순에 이르렀다 했으니...

귀가 순한 사람이 칼로저스 처럼 뛰어난 상담자가 될수 있는것 같다...

2012년 5월 10일 목요일

칼로저스 공식사이트 / Miss Mun 사례

칼 로저스의 공식 사이트
http://www.carlrogers.info/index.html

사이트에서 볼수 있는 내용
폴틸리히와의 인터뷰
유명한 Miss Mun 사례와 여러 상담 사례를 동영상으로 제공.
칼로저스 인터뷰등등...

칼로저스의 상담사례을 보면 내담자의 감정선을 읽으면서 내담자가 담아두면서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말할수 있도록 하는것 같다.
일반적으로 말을 할때 상대방에게 어느정도 까지를 말을 해야할까의 범위를 설정한 채 말을 한다. 그래서 모든 말을 다할수 없다.  칼로저스는 그러한 분위기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것 같다. 들어 보면 별것도 아닌것 같지만, 내담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칼로저스의 마음에 편안함을 느낀다.

내담자가 칼로저스와 상담을 하면서(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알아가는 것 같다. 칼로저스는 지시를 통해서 혹은 권위를 통해서 상대방의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느끼고, 자신의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칼로저스는 도와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영어가 딸려서 자세히는 알아 듣지 못하지만 그런 느낌이다.

칼로저스 공식 사이트에서 사례들을 여러차례 반복해서 본다면, 간접경험을 통해서 칼로저스의 사상의 이해의 폭을 좀더 넓힐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