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4일 토요일

공주병 왕자병

세상은 어떻게 돌아 가야하고,
정치는 이러이러해야 하고,
사회는 이렇게 돌아 가야하고,
경제는 이렇게 해야한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날 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나의 문제만 남게 된다.
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세상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어 간다.
내가 힘들기 전에는 나의 문제에 대해선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기독교는 교리는 이러해야 하고,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상을 가진다...
그러나 내에게 문제가 생기면 교리가 이러이러해야 한다에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줄수 있는 대상을 구하게 된다. 그 대상은 전지 전능한 대상일수록 나를 구할 가능성은 많아 진다.

대상을 항상 바같에 둔다.
평시에는 세상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나를 구원할 대상을 찾는다.

공주병, 왕자병도 이와 같은 것 같다.
부모님은 나를 위해서 이러이러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부모님에게 의존하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 관계를 만들어 가지 못한다.
대상은 항상 밖에 있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 보지 못한다.

자신을 돌앙 보지 못하면 공주병 왕자병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싶다.

2012년 3월 16일 금요일

있음에서 함으로, 마뚜라나 .. 개떡같은 책이다.




개떡같은 책이다.

'개떡같다'라는 말은 '보잘것 없는 것'라고 일반적으로 의미한다.



개떡이라는 단어를 모른다면 '이책은 개떡같다'라는 의미를 알수 없다.

그러나 '개떡같다' 라는 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책이 보잘것 없다라는 의미로 평가하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일반적인 세계도 이런식으로 인식한다. 지금까지 배워오고 살아온 데로 인식한다.

지금 보여지는 것과 그 인식이 머리속에 형성하는 것을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하게 된다.


마뚜라나와 발렐라가 쓴 앎의 나무에서"사람들은 보통 무엇(예컨데 공간이나 색채)을 그냥 받아들여 지각한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는 개인의 구조가 뚜렷이 새겨져 있다.
..... 평소 매우 단단하고 확실해 보이던 것이 얼마나 빨리 허물어져버릴 수 있는지 생생히 기억할것이기 때문이다. "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실 '앎의 나무', '있음에서 함으로' 라는 책이 보잘것없는 책이아니라 엄청난 책이다.


누군가 어떤 말을 하면 개인이 가진 사고의 구조속에서 판단한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이 하고자하는 의도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듣는사람의 판단에 의해 말은 판단되어 진다.


문제는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의 판단 구조를 알고 있다면, 말하는 사람은 원하는 의도를 상대로 부터 끌어 낼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의 계절이다. 수없이 많은 정치인들이 수없이 많은 말들을 쏱아 낸다. 쏱아내는 이유는 의도를 포함하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반응하는 조건을 충분히 연구를 했고, 반응을 끌어 낼것이다.


이책은 보이는데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것을 이야기한다.


"이책은 개떡같다" 이러한 말에 혹해서 이책을 읽지 않으면 엄청나게 중요한것을 놓치게 될것 같다.


정치의 계절..... 정치인이 하는 이상한 말에 나도 혹하지 말야 겠다.

삶이 무엇인가? 묻는 다면 당황스럽다.

삶이 무엇인가? 묻는 다면 당황스럽다.
삶이 무엇인지 정의 하긴 어렵다.
그러나 삶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한다고 삶을 모르는 것일까.
누구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삶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그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른다고 손을 못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삶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삶을 못사는 것은 아니다.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 설명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손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우리 의도대로 손을 움직인다.
내가 삶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도,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삶을 살아 간다.

삶이 무엇인가? 누구나 다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앎을 따라 살아 가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묻기 전에는 알수 없다.

2012년 3월 4일 일요일

매너나 하면서 대충 대충 살아가고 있구나

마트에 갔다.
앞사람과 부딛혔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분은 그래도 화를 냈다.
그분의 화에 나도 화가 났다.

미안하다고 했을때
용서는 그사람이 하는 권리라는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잘못을 했을때
내가 내스스로를 용서를 했고,
내가 스스로 용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했었다.

나는 매너를 했고, 그분도 매너를 하기를 바랬는데 그게 아니어서 화가 올라온것 같다.

'나'라는 존재가 '매너나 하면서 대충 대충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그런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