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6일 목요일

생각바꾸기 마음은 바꾸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

생각이 바뀌면 된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생각이 바뀌는 것이 쉬운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드러난 문제(보이는 것들)은 생각이 바뀌면 된다라는 것에 적용이 된다.

한국인이 있다. 미국이로 이민을 갔다. 미국 국적으로 바뀌었다.
한국인 이었을때 미국과 한국이 축구경기를 하면 한국을 응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국적으로 바뀌고 난후, 많은 미국인들과 축구를 같이 보고 있을때, 공식장소에서 한국을 응원한다는 것은 조금 꺼려지는 것일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있을때 한국말고 다른 나라를 응원하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었을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고, 비록 한국을 응원하고 싶지만, 응원하기가 꺼려 지는 상황이 될수가 있다. 드러나지 않는 것이 드러나는 것디 되는 상황과 마주 하게 되는 장면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생각을 바꿔야한다 이런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바꿔야 한다고 느끼는 것들은 드러난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이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 있는 것들, 무의식 적인 것이라든가, 어떤 문화에 둘러 쌓여있어 다른 것을 생각해보지 않은 경우라든가... 등등...
그러나 드러나는 생각 조차 바꾸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드러나는 생각들은 생각의 뿌리에 영향을 받아 밖으로 드러 나는 부분이다.
그러나는 부분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지 않는 거대한 뿌리의 영향을 받게 된다. 바뀐것 같은데 많은 시간이 지나가면 그대로 인 경우가 많다.

그본적인 것들은 많은 노력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이 한국을 응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반대의 경우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바뀌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드러난다. 그러나 드러난다고 해도 응원하는 마음은 그대로 인경우가 많을것 같다. (밖으로는 응원을 안한다고 해도)

조금 이상한 데로 흐른 면이 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마음속의 내가 거부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다고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감정을 걷어내고 바라 본다면 보이게 된다.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산소와 질소 등등을 포함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욱 근본적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을때 내가 변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수 있다.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뀌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은것 같다.
자신을 바라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2012년 8월 14일 화요일

이제 LG야구팀을 싫어한다. 공감치유, 공감은 치유의 힘을 가진다.

한때 LG의 팬이었다.
어렸을때 MBC 청룡을 좋아했다. 대부분 친구들이 삼성을 좋아했었는데, 청룡이라는 문구때문이었는지 혹은 백인천의 카리스마 때문이었는지 청룡의 팬이었다.
그리고 LG로 바뀌도 LG를 좋아하는 팬이었다.
지금은 다르지만 20년 전에 대구 구장에서는 자신이 LG팬이라고 드러내고 응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열심히 응원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부터 LG를 조금씩 거리가 느껴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가장 싫어하는 팀으로 바뀌었고, 야구도 잘보지 않는다.
정삼흠, 이광은, 김건우, 김용수, 박준태... 이런 선수들이 있을때 좋아했었다.

LG를 좋아한다. 좋아 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간단한것 같다.
LG를 좋아했을때,  LG를 싫어한다라는 것은 생각할수 없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지금 LG를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싫어한다고 마음을 먹는다고 싫어 할수 있는 것이 아닌것 처럼... 
지금 LG트윈스을 싫어하는 데, 지금 마음을 먹는 다고해서 좋아질수 있는것은 아닌것 같다.
"LG 야구팀을 좋아했었는데, 어느순간 부터 싫어 졌다." 이렇게 말했을때 이말은 단순하다.
그러나 나와 같이 이런 경험을 했다면,  왜 싫어졌는지는  말을 안해도 이해가 될수 있을것 같다.

영화를 보고 왔는데, 그 영화를 보고 감탄했다면, "감탄했다"란 단 한마디가 그 영화를 보고 나서 감탄한 사람에게는 모든것이 전달될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지않은 사람에게 감탄했다라고 말하면, 감탄한 내용을 세세하게 설명해야 할것 이다. 아무리 세세하게 설명을 한다고 해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그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기 전에는 알기가 어렵다.

경험을 통해 감정이 공유된다라는 것은  어떤 단 한마디로서 공유된 모든것이 설명할수도 있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감정이 공유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 것을 정확하게 설명할 길이 없다.

여기서 공감(感)이라는 말을 알수가 있는것 같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공감할수는 없는 것 같다. 공감하는척 할수는 있지만...
내가 공감하고 있다라는 것은 상대방이 나의 몸짓 하나, 말투하나에서도 느낄수 있을것 같다.
아무리 말로 설명을 해도 설명할수 없는 것을 단 하나의 몸짓이나 말투로 설명이 가능한것이다.
"나는 LG야구팀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싫어한다." 이 한문장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말이 필요하지만,  경험한 사람에게는 설명이 별로 필요없다.

심리상담에서는 많은 이론들이 있다. 이론들은 분석을 지향한다.
아무리 분석을 해도 어떤 상태를 정확하게 알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감정을 공감할수 있다면 단하나의 몸짓과 말로써 느낄수 있다.
그러나 공감이라는 것은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힘든일인것 같다.
공감이란 내가 상대방의 감정에 둘러 쌓이는 것인데, 역전이의 부작용에 빠져들수도 있다.
공포라는 것, 불안이라는 것, 분노라는 것에 상대와 더불어 빠져버리면 안되는 것인데...
그속에 빠지지 않으면 상대를 공감할수 없는 것이니
공감이라는 감정 상태에  빠지면서, 완전히 빠져서는 되지 않는 것인데, 이러한 상태를 유지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 라는 생각이 든다.
공감을 배운다는것이 이론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 보다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도정신분석에서 이동식 선생님은 자신을 갈고 닦는것을 강조한다.

공감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를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인데, 감정의 왜곡을 거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이  치유의 힘을 갖는데, 공감은 상대로 하여금 내가 거울이 됨으로써 감정의 왜곡없이 자신을 바라볼수 있게 하는 힘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