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9일 화요일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

우리는 기억을 가지고있다.
그 기억들의 연결을 경험이라고 한다.

어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것들이있고, 기억에서 사라진 것들이 있다.
기억에 남은 것들이 경험이 된다.
어떤 것들이 기억에 남을까.
나에게 의미 있는 사실들만 기억에 남는다.

나는 어떤 대상(사물이든, 사람이든, 생각이든)을 만난다.
그 대상들중에 의미있는 것들만이 기억으로 남게된다.
그 기억들을 경험이라고 한다.
경험은 나의 의미의 역사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그 의미라는 것이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사람은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 가야 할지를 배우게 된다.
생존과 관련된 것들은 기본적으로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나 대부분은 부모님이나 학교를 통해서 의미있는 것들을 배우게 된다.
배움을 통해서 의미를 알게 되고, 그러한 의미들이 나의 경험을 이룬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가면서.. 그러한 의미들이 진정 내가 추구하는 의미인가를 묻게되는 시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 시점에 내가 경험하는 것들이, 내가 추구해야할 진정한 의미가 아닌경우... 지나간 경험들 조차도 무의미하게 되는 시점이 온다.

제도나 규율로서 강제되어지는 의미들은 사회생활에서는 꼭 필요한 것들이다.
이러한 의미들을 거부할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만이 추구해야할 의미들도 존재한다.
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무의미의 나락으로 빠져들어 간다.
세상의 의미에서 나의 의미로 전환이 이루어 지는 시점, 불안이 다가온다.
세상의 의미는 나의 책임에서 벗어나지만, 나의 의미의 추구는 나의 책임으로 가다 오기 때문이다.

이시점 불안이 찾아 온다. 나의 존재의 무의미를 느끼는 순간...
세상에는 많은 불안들이 있지만, 이때 찾아 오는 불안이 실존(내가존재하는 이유에서오는)적인 불안이 된다.
우리는 이 불안을 거부할수 있다. 불안을 잊기 위해서 세상은 나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 준다.
세상에서 제공해주는 의미를 잡기만 하면 불안에서 탈출 할수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공해주는 의미만으로는 부족한다.
의미가 경험을 이루고, 나의 역사를 이룬다.
그러면 세상이 제공해주는 의미만이 나의 역사를 이룬다면, 나의 역사는 나의 것이 되지 못한다.

무의미를 만난다.
불안해진다.
우리는 그불안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노력해서는 안된다.
그불안에 맞서서 그불안에 나에게 가르키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불안은 나의 의미, 나의 역사를 시작하는 방향을 알려준다.
무의미라는 것은 의미의 시작이다.
무의미를 회피하면 무의미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무의미한 나의 역사...

무의미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나에게 의미의 방향을 알려주는 성장통이다.

무의미 때문에 삶을 중지해서는 안된다.
무의미가 고통스럽더라도...
그 고통은 나에게 새로운 삶을 일깨우는 어떤 것이다.
새로운 삶은 거기서 시작한다.

2013년 3월 18일 월요일

나를 찾아서...찾기 시작하면 찾을수 없다.

'나를 찾는다' 이말속에 '나'라는 존재가 현재의 나와는 다르게 어딘가 존재해 있다는 것을 포함한다.
내가 찾는 '나'라는 존재는  뭔가 이상적인 것을 알고 있고, 완벽한 존재인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찾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를 찾는다고 시작할때 우리는 사색을 시작한다.
머리로서 나를 찾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하기 시작한다.

생각하고 있는 내가 '나'인데,  지금의 내가 '나'가 아니라면 누가 나인것일까.
지금은 나는 진정한 '나'가 아니고 진정한 '나'는 따로 있다고 말할수 있을것 같다.
나는 분리 되어 존재하는 것인가.
내가 '나'를 찾기 시작하면 나는 나로 부터 분리 시키기 시작한다.
찾는 대상이 되는 '나'와 찾고 있는'나'로 분리 된다.
내가 찾고 있는 동안는 나는 완전한 나를 찾을수 없다.
왜냐 분리되어 있는 반쪽의 나밖에는 발견할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난이 우리를 성숙시킨다 라는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생각한다'라는 단어에 주목을 해야한다.
생각하는 것이다.
화장실 휴지가 없이 1주일을 살아야 한다면, 불평이 나올것이고, 이것을 못참는 사람도 나올것 이다. 나도 이미 휴지에 적응해 버려서 나뭇잎이나 신문지등을 사용하는것은 생각할수도 없다.
고난이 나를 성장시킨다고 하지만, 휴지없이 1주일을 보내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런 고난은 우리가 생각하는 나는 성숙시키는 고난이 아니라고 여길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의 현실과 몸으로 느끼는 현실은 항상 다르다.

내가 발견하고자 하는 '나'라는 존재는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이상적인 존재인것 같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휴지도 없으면 불편을 느끼는 '나'이다.
뭐가 진짜 나인가.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가 진짜라고 믿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를 바라 보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나'는 불편함에 불평하는 '나'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에서 적응된 '나'와의 차이가 너무 커지면 분열이 일어나고, 그 분열은 정신분열이 되거나 우울증이 될수도있다.

그러면 나는 찾는 것은 필요 없는 것일까.
나를 찾아야한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행동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나'인것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나'는 분리된 나이기 때문에 그 '나'는 반쪽의 '나'밖에 될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나를 발견 할수 있을까.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순간 내가 지금여기서 발견하는 '나'는  내가 모른다라는 것을 아는 순간이 온다. 그때 자신이 뚜렷히 보이게될것 같다.
내가 발견하는 것은 '부족한 나'가 아닐까.
나의 발견은 나의 완성이 아니라, 내가 모른다는 것에서 시작하는 처음이지 않을까.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인생은 편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사무실에 앉아있다.
밖은 비소리인지 차소리인지 분간이 안되는 소리가 들린다.
형광들 불빛과 컴퓨터 모니터 두개에서 나오는 불빛이 태양을 대신하고 있다.
오늘은 태양이 힘을 잃어, 이 두개의 불빛이 나의 시야를 밝혀준다.

점심을 먹었고, 조금은 나른하고 조금은 잠에 취해 있다.

일을 보러 밖에 나가야 하는데, 조금 지체 하다... 30분이 흘렀다.

마이크를 주문했다. 글을 이야기로 해보려고 하는데...
어제 내가 내목소리를 듣고 기가 막히더라.
너무 익숙한 내 목소리가... 내목소리인지 분간이 안될정도로...

'인생은 편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이말이 내 가슴에 들어왔다.
나를 둘러싼 어떤 것이든 내가 감당해보자.
쓰러지면 쓰러지는데로... 아프면 아픈데로..

2013년 3월 11일 월요일

숨쉬기 너무나 익숙한것...

숨을 쉰다.
대부분의 시간, 나는 내가 숨쉬고 있다라는 사실을 망각한체 살아 간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굳이 의식을 하지않고 숨을 쉰다.
'나는 매순간 내가 숨쉬는 것을 의식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을 뭐라고 할까.
그러한 의식은 다른 삶을 방해한다. 바쁘게 살아 가는 세상에서 그만큼 뒤처친다.

'내가 숨쉬는 것을 의식하는것' 이것이 명상이라고 한다.
내가 '나인 것의자각'의 시작을 숨쉬는 것 부터 시작한다.
그 시작이 숨쉬는 것을 의식하면서 시작하는 것은 숨쉬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인것 같다.

3월이 왔다. 나의 계획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들은 뒤로 밀린다.
언제나 특별한 무엇인가를 찾는다.
숨쉬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숨쉬는 것을 의식하지 않은체 살아 가듯이, 나도 중요한, 너무 익숙한것을 가장 뒤로 미루면서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