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7일 화요일

삶은 깨어 있으므로 알수 있다.

잠결에 술을 한잔 먹었는데, 그게 100만원 짜리 와인 이었다면 억울할 일일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깨닷지 못하면 그게 100만짜리 이던 1000원 짜리이던 아무 소용이 없다.
깨어 있을때만 그게 무엇인지 알수 있다.

세상이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깨어 있지 못하면 그 일들이 무엇인지 구분할수 없다.

성경을 본다. 지식으로 많은 것을 보았다. 이책도 보고, 저책도 보고...
많이 아는 것으로 성경을 안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성경은 아는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그 구절들을 통해서 무엇을 느끼느냐.
'안다'라는 것은 어떤 것의 정의를 파악하는 것이다.
성경 구절 구절들은 정의할수 없는데, 안다고 할때 개념의 모순에 빠져서 자만으로 들어 간다.

와인의 맛은 지식으로 알수 없다. 말로 전달할수도 없다.
수없이 많은 경험을 통해서 본인이 느낄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맛은 주관적이다. 그러나 결국 보편성을 따라간다.

성경을 읽을때 처음에는 주관적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삶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편성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읽으면서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 주관적인 감정을 부정하게 되면 객관성을 추구 하게 되고, 지식으로 성경을 읽게된다. '나는 성경을 안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성경을 읽으면서 다가오는 개인적인 느낌이 "나의 깨어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자신의 느낌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그 대로 받아들이고, 삶을 바꾸어야 한다.
깨어 있는 위치는 사람마다 다른지만, 더 깊은 곳을 추구 하게 된다. 깊이 깊이 들어 갈수록 중앙을 향하게 되고, 중심은 한곳이므로 보편적이 된다.

80이 되신 초등학교 밖에 안나온 할머니가 영하10도가 넘는 날씨에 새벽기도에 가시는 것은 지식으로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삶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깨어 있지 못하면 100만원 짜리 와인을 먹고, 맛을 알수 없다.
삶은 깨어 있으므로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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