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7일 금요일

사회원예학의 권장 / 치유의 힘

이성과 과학이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인가 정확하고 논리적인것을 좋아한다.
'사회원예학의 권장' 약간은 철학적이다.

에리히프롬이 서양은 명사를 주로 사용하고, 동양은 동사를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서양은 have로 표시되는 획득 중심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동양은 being 존재하는 상태를 중심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지금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획득, 소유'라는 것이 사고유형의 중심이다.

원예의 특징이 '기른다.'라는 행위이다.
대상은 식물이다.
식물을 기르는 과정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바라본다.
작가는 기른다는 과정에서 획득보다는 기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 기르는 과정이 치유의 역할을 한다고 보는것 같다.

씨앗을 뿌려서 식물을 기른다. 만약 전과정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처음에 단순희 수확물의 획득을 목적으로 했더라도, 과정속에서 느끼는 것은 최종수확물을 사는 소비자와는 다를것이다.

'식물을 기른다'라는 것은 식물이 가지고 있는 성장의 가능성을 최대한 드러낼수록 만들어 주는 고정이다.

사람은 양육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그러다 성인이 되면 스스로를 양육하는 책임을 진다.
사람의 가능성은 최초 부모에 달려 있지만, 스스로에게도 책임이 주어진다.

저자는 농예를 이야기 한다. 농사를 짓는것도 예절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절을 매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와 매너는 다른것이다.
매너는 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예라는 것을 진정성을 넣는 과정이다.

산에 오르는 행위는 고생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속에 보람이 있다면 그 고생은 고생을 넘어서는 어떤것이 된다.
그래서 또 산에 오른다.

"식물을 기르는 행위" 그자체는 피곤하고 시간낭비적일수 있다라고 생각할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보람을 느낄수 있다면 '기르는 행위'는 기르는 대상을 살리뿐만 아니라 기르는 본인도 치유하는 힘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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