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3일 월요일

폴 틸리히 /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자

일요일 밤이 지나 월요일이 되었다.
삶이란 그냥 흘러 종착점을 향해 나아간다. 무엇인가 허전하면서도 그냥 흘러간다.
삶의 동력을 잃은 듯도 하면서, 방향성도 잃은것 같고, 그렇지만 물위의 나뭇잎이 물길을 따라 그냥 일정한 방향으로만 흘러 가듯... 내가 방향을 설정하지 않아도 그냥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 간다.
오늘 하루가 그렇게 느껴졌다.

'항상 깨어있어라' 깨어 있지 못하면 그냥 흘러 갈수 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깨어 있기 힘든 이유는 순응하는 삶을 살아 오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순응하는 삶, 깨어 있을 필요가 없는 삶... 권력에 순응하고, 돈에 순응하고, 두려움에 순응하는 삶...
나는 그렇게 살어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틸리히는 설교집 "영원한 지금"을 통해 '순응하지 말라' 라고 말한다.

" 순응주의적 경향은 ... 또래 집단의 규율이 하나님의 법과 인간의 법들보다 중요하게 간주되는 소년 시절을 거치고,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부과한 규준들이 아주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고등교육 기관에서 몇년을 거치고, 성인들간의 경쟁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성공을 위한 수단들에 적응하는 시절을 거치고, 성숙과 권력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금기들을 해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하는 시간들을 거친후, 종교의 선전자들이 임박한 종국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낡은 종교적 순응주의를 전파하는 우리의 삶의 만년까지 계속 됩니다."
...
" 예수님을 가장 효과적으로 위협하고 그분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순응주의는 그분 시대의 '종교적 순응주의' 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교회 안에서도 다르지 않았고 지금도 마찮가지 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교회들안에서 오는 세대를 대표하고 있을지라도, 이 세대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들은 이세대의 부패와 그것의 선과 악의 혼합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의 역사는 교회의 부패에 대한 끊임없는 증언의 역사입니다. "
...
"그러나 나는 주저 없이 말합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조차 순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그런 행위 또한 모험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틀릴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순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그런 모험은 가장 고상한 형태의 종교까지도 포함해 모든 인간적인 것에 대한 하나님의 저항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
...
" 그러나 우리는 그런 죄책감조차 감당해야 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실패하는 자는 용서받을수 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자는 그의 존재 전체가 이미 실패입니다. 그는 용서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에게 용서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이세대에 순응하지 마십시요"

어릴때 깨어 있는 삶은 멋있게 보였고,그것이 삶의 의미 처럼보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갈수록 깨어 있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가난이 두렵고, 아픔이 두렵고, 불안함이 두렵다. 그래서 이러한 두려움을 해소할 만한 것들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 가고 있다.
말은 머리에만 머무른다. "깨어 있어라, 순응하지 말라" 머리에서는 알겠는데 몸은 순응하면서 살아 가고 있다. 시간은 언제나 종착점을 향해 나아간다. 주어진 시간은 사라져 가고있다.
급박함이 없으면 주어지 시간은 사라지고 말것 것이다.

시작하는 월요일 다시 급박함을 가지고 마음을 다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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