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9일 토요일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어찌보면 선한 사람들이다

사람 각자는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 간다.
보여 지는 모습 그것이 자신이다.
각자는 어떻게 보여지길 원한다.
누군가를 만날때, 내가 보여졌으면 하는 모습으로 변신을 한다.
옷도 갈아 입고, 만나는 대상에 따라서 내 감정또한 앞의 대상에 따라서 변한다.
내가 가진 감정(분노,  불안, 의심..) 과 욕망을 앞의 대상에 그대로 드러낼수 없다.
내가 보여질 원한다는 것은 문화, 법률, 예절 등의 형식을 기준으로 만들어 진다.
진솔하게 보여 줄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혼자있는 공간에서의 행동과 여럿이 있는 공간에서의 행동은 달라질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잘 느낄 수는 없다.
문화, 예절등을 공기와 같아서 그속에 있는 사람은 그대로 적응을 하기 때문에 그것에 맞추어 살아 간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래서 변신은 당연한 것이 된다.
어떤 공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공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
이것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으면 당연한 것이 된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바람직 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원하는 것의 차이가 커질때 문제가 된다.
"어떠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할때 그 사람이 그 모습으로 보여 줄수 없을때 문제가 된다.
혹은 자신이 보여지는 모습속에서 가식을 느끼던가, 죄책감을 느낄때도 문제가 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의 모습의 차이가 커질때 문제가 발생하고, 자신이 원하는 욕망과 그 욕망속에서 죄책감을 느낄때 마음의 문제가 될수 있다.

우울증은 두가지 속성을 가진다고 한다. 하나는 분노이고, 하나는 죄책감이다.

대상이 없으면 내가 어떻게 보여 줄필요가 없다.
그러나 삶은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어떻게 보여줄 필요가 생기게 된다.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어찌보면 선한 사람들이다. 자신을 보여지는 모습을 판단하는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죄책감이 더많이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어떤 분노를 타인에게 쏱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쏟아내는 사람들이다.
우울증에 걸리기까지 이렇게 살아온 분들이다.
그러나 울울증이 발생하면 성격은 다르게 보여진다.
도저히 견딜수 없었기 때문에 분노가 밖으로 드러나는 경우라고 볼수 있을것 같다.
드러나면 안되는 분노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최책감을 느끼게 된다.

우울증은 누구의 문제로 발생되는 걸까. 우리는 본인의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본인의 문제로 인해 만들어진 병이 아니라 그 우울증이 걸린 사람과 관계있는 모든 사람의 문제가 우울증이 거린 사람에게로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된다.
본인만의 문제라면 본인혼자 해결할수 있다.
그러나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혹은 그녀)와 관계된 모든 사람이 변하지 않은면 해결이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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