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31일 화요일

너무 생각나는 데로 써서 내용을 알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한다.
오전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오후 일을 한다.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고, tv를 본다.
마누라하고 이야기 하다가 tv를 보든, 인터넷을 한다.
잠이 오면 잠을 잔다.
내가 오가는 길은 항상 일정하다.
지도에 내가 하루에 움직인 동선을 그려보면 일정 영역을 벗어나지 않은다.
이것이 내가 평일 하루에 움직이는 물리적 동선이다.

정신의 영역은 항상 저멀리 달린다.
정신의 영역은 한정이 없을 것이다.
내가 작은 방안에만 있어도, 정신은 세상의 모든것을 다 가질수도 있다.

그러나 정신의 영역도 내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그속에서 움직이려 하는 경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유행을 따르기 시작하면, 내 정신은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그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치인들은 구호를 만든다. 그 구호들이 나에게 다가오고, 나는 구호속에서 사고하기 시작한다.
편을 가르고, 다른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잘못된것 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같은 구호를 외치면, 도덕적 결함들도 이해 되는것 처럼 느껴진다.

무엇이 옮고 그른것 일까.
일단 나에게 좋을 것을 주는 것이 옮은 것으로 느껴진다.
느낌이 언제는 바른것은 아니다.
내게 불편한것으로 느껴 지는 것이 항상 틀린것은 아니다.
내 감각은 불완전한 것이다.
불완전한 감각에 의존해서 세상을 판단 하면, 그 판단도 불완전한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내가 힘이 없고, 가진것이 없고, 병약할때 내가 세상이 야속하게 느껴 지도록 만든다.
나를 둘러산 세상은 내가 힘이 있고, 가진것이 많고, 건강할때 나에게 항상 친철하게 느겨 진다.
세상이 나에게 친철하던, 야속하던, 내 불완전 한 감각 속에서 느끼는 것이다.
어느 상황에 속하던, 내가 느끼는 감각은 진실이 아닐수가 있다.

하루 하루 단순한 물리적 동선속에서 살아가면서, 정신만은 무한한 자유를 가져야함에도, 내게 느껴지는 감각에 의존하거나, 정치인들이 하는 구호속에서 사고의 영역이 제한되어 지고 있으므로, 정신도 단순한 물리적 동선처럼, 일정 영역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정신의 자유는 육체를 괴롭힌다.
선행도 육체를 괴롭힌다.
믿음도 육체를 괴롭힌다.
사랑도 육체를 괴롭게 한다.

육체가 힘들다는 것은 정신이 자유로워 진다는 기반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내가 육체적 편안함을 추구 하게 되면, 정신의 편안함을 잃어 버릴수가 있다.

몸을 움직이자.
몸을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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