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9일 월요일

세상에 정신적인 고통을 안고 살아 가는 것은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인것 같다

사람은 엄마를 통해서 세상에 태어난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는 일정기간 동안 아무것도 할수 없다.
그 일정 기간 동안 아기는 엄마를 완전히 믿는다.
믿는다 라는 개념도 없지만, 완전히 엄마를 믿는다.
믿지 못하면 자라지 못한다.

아기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엄마에 대한 완전한 믿음은 조금씩 약해져간다.
어느 순간 엄마의 유한성을 발견한다. 엄마가 자신에게 해줄수 없는 것을 조금식 발견하면서 사춘기를 맞이 한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깍을때 머리를 이발사에게 맡긴다. 믿는다라는 개념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냥 머리를 맡긴다. 그러나 이발에 대한 기술이 많을 수록 이발사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병이 나서 병원에 갈때 의학상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의사를 믿지못한다.


믿음이란 '자신이 모른다라는 것'을 알때 깊어지는것 같다.
어찌 보면 소크라테스가 무지에 대한 자각(모른다라는 것과 할수 없다라는 것을 포함하는)이 믿음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선택을 받았다거나, 모든것을 다할수 있다고 여기는 순간, 자신만을 믿게 되고, 다른 사람을 믿을수 없게 된다. 사회적을 성공하면 할수록, 그 성공이 자신에게서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대상에 대한 믿음은 없어진다. 그 대상은 신에 대한 믿음도 포함된다.
세상에 홀로 있는 인간이 된다. 가장 궁핍한 상태가 된다.


믿음은 자신의 부족을 자각하는 데서 시작되고, 믿음의 완성은 그 자각 자체도 없어지는 '무'에서 완성된다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정신적인 고통을 안고 살아 가는 것은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인것 같다.
옆사람을 못믿기 때문에 마음에 묻힌 말을 할수 없고, 그 할수 없는 말때문에 응어리가 지고, 그 응어리가 고통을 만든다. 고통스럽지만 말할수 없다. 믿을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것을 가져도 궁핍한 상태가 된다.

옆의 사람을 믿기 시작할때 치유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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