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3일 금요일

듣는 귀

이야기를 듣는다는것이 쉬운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무서운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다면, 그 이야기를 듣고 있기가 힘들것이고,
진보를 지지하는데, 엄청나게 강한 보수의 시각으로 진보정치인의 흠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이것도 힘들 것이다.
반대로 보수를 지지하는데, 엄청나게 강한 진보의 시각으로 보수정치인의 흠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이것도 힘들 것이다.
교통사고를 경험해서 그 쪽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데, 누군가 그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할경우도 듣고 있기 힘들 것이다.
자신이 불안해 하는 것이 있는데 상대방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그또한 듣기가 힘들 것이다.

이야기를 할때 듣는다는 것은 가끔은 엄청 힘든일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이야기 하는 본인의 쌓인 것을 푸는 것이므로 오히려 이야기를 하는쪽이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들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칼로저스의 상담대한 부분을 읽었는데, 그가 말하는 상담의 핵심은 듣는것이라고 한다. 듣는다는 것은 참아서는 계속 듣고 있을수 없다.
전이나 저항때문에 분노가 올라 오기도 하는데, 그걸 참고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하면, 한번을 들을수 있지만 지속할수 없다.

듣는 것이 귀에 거슬리지 않아야 들어수 있는데, 그러한 단계에 올라가기 위해서 자신의 끊임없이 비워야 할것 같다.

세상이 갈수로 개인적이 되어 가는 것이 갈수록 귀에 거슬리는 소리 들이 많기 때문에 들을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를일이다.

듣고 화를 내는 것보다 더 안좋은 것은 그 올라 오는 화를 만들지 않기위해서 듣는 것을 포기 하는 사회의 분위기로 가는 것 같다.
어떤 농담의 한마디로 고소의 대상이 되는 사회...

앞으로의 공부의 방향은 어떤 말이든 들어 줄수 있는 귀를 가지기 위해 수양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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